'재미있게' '지속적으로'

1일 1커밋 #99

by 김디트

오늘 하루를 마치면서, 다이어리에 오늘 해낸 일들을 꾹꾹 눌러 쓰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재미있게 지속적으로 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 생각해본다. '재미있게', '지속적으로' 두 가지 모두 까다로운 일이다. 언뜻 보면 굉장히 상충되어 보이기도 한다. 재미있다가도 지속하면 재미 없어지고, 재미없다가도 지속하다 보면 나름의 재미를 찾기도 했으니 그렇게 보일 만도 하다. 만약 상충된다면 나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 삶을 살아왔느냐 하면 나의 경우엔 주로 '재미있게'보다는 '지속적으로'쪽에 좀 더 힘을 주고 살아왔던 것 같다. 아마도 지속적임이 주는 성취감이란 게 참 편리해서 그런 게 아닐까 지레짐작해본다. 아무튼 해내기만 하면 일정 분량의 감정이 채워진다. 마치 일정 시간만 잘 버티면 촤르륵 채워지는 강아지 사료 같은 보상이다. 분명 지속하는 건 지난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그 어려움은 명확하다. 분석이 용이하다. 나의 실패 원인이 뚜렷하므로 수정하기도 쉽다. 적당한 난이도와 적당한 아웃풋인 셈이다.


반면 '재미있게'라는 조건은 상당히 까다롭다. 사실 아직까지도 '재미있게' 해내기의 뚜렷한 달성 조건은 발견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거기에 '지속적으로'라는 조건까지 달아서 윙윙윙 믹서기로 섞어버리고 나니 그 발발 조건은 더더욱 오리무중이 되었다. 내가 해나가는 것들은 무엇이든간에 간혹 가다가 정말 재미있다가도 대부분은 처참하게 재미가 없었다. 그럼에도 지속해야 한다는 점은 나를 곤란스럽게 만든다. 그 간혹 가다가 재미있다는 점이 괘씸하다. 아예 완전히 재미가 없었다면 재미를 발견하기를 포기라도 할 텐데 간혹 가다가라도 재미가 있어버리니 오늘은 재미있겠지, 매일 기대하다가 빈번히 실망한다. 이 부분은 작은 폰트로 쓰고 싶지만, 사실 고백하자면 글쓰기에서도 겪는 일이다.


사실 얼마 전, '재미있게'의 조건을 드디어 발견해냈다. 우연찮게 발견한 것도 아니고 주도적으로 움직여서 발견했다. 비유하자면 보물섬의 주인공 짐이 보물 지도와 함께 떠난 그 여행 같은 걸 거치고 나서 획득한 재미였다. 그 여행이라는 건 바로 서핑. 제주도에서 꼬박 이틀을 서핑에 몰두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파도 거품처럼 부서져라 바닷가를 뒹굴거렸다. 손과 얼굴이 새까매진 채로 해변에서 햄버거와 음료를 빨아들이면서도 아까 전엔 패들링이 조금 느려서 파도 위에 못 올라갔던 것 같다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이게 바로 '재미있게' 한다는 것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재미있게'란 시간, 자금, 체력 그 모든 다른 조건보다 우선할 수 있어야 도달할 수 있는 경지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재미있게'의 선결 조건은? 쉬웠다. 하지만 까다로웠다. 바로 완전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란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다. 심지어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예컨대 옛날에는 간단한 게임 하나만 던져줘도 그 조작법 하며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통달하는 것에 도전 욕구를 느꼈을 테지만, 지금에는 같은 방식을 끊임없이 재생산하여 나오는 그 게임의 본질 때문인지 도전욕은 커녕 매너리즘만 느낀다. 그렇게 내 주변의 것들은 하나하나 도전과제에서 매너리즘으로 모습을 바꾸어갔다. 서글픈 일은 내가 사랑했던, 사랑해야 하는 것들도 그렇게 되어가는 중이라는 점이다. 나는 그것들의 멱살을 꽉 쥐고 '난 아직 네가 좋아!' 비명을 질러 보지만, 그것들은 거친 물살에 곧 떠내려가기 직전이다. 난 놓치지 않게 꽉 붙들고 있는 게 고작이고.


아무래도 지금까지 발견한 '재미있게'의 유일한 조건은 그다지 유용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재미있게'라는 감정을 손에 잡힐 듯 명확하게 겪어보는 게 나의 몸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내 몸 어딘가에 숨구멍이 퐁 돋아서 온 몸 구석구석을 환기시킨 것처럼 시원해졌다. 다시 서핑하러 가죠, 함께 했던 분과 이야기를 나누며 서핑 보드며 웻 슈트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그 기분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 덕분에 나는 왠지 '지속적으로' 내 삶을 꾸려갈 연료가 채워진 것만 같았고, 오늘도 조금 더 힘을 내서 지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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