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는 나는 단수가 아니다

1일 1커밋 #97

by 김디트

뭐든 좋으니 텍스트를 눈 안쪽으로 쑤셔 넣고 싶을 때가 있다. 예컨대 몇 초 간격으로, 광고와 함께 끊임없이 이어지는 동영상을 시청하고 난 후, 마음속 공허함을 물리칠 수 없을 때라던가. 혹은 내 뇌 속으로 자극의 직격탄 공세를 펼치는 유머 글들을, 결국 폐허 같은 마음만 남기리라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탐독해서 노곤해진 후라던가. 그럴 때면 왠지 활자가, 텍스트가 그리워지곤 한다. 짧고 자극적인 컨텐츠가 아니라 템포를 길게 가져갈 수 있는 텍스트 종류들 말이다. 마치 마라톤을 마치고 난 후에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차가운 물이 마시고 싶어 지듯이 그런 텍스트들을 마시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마 집이었다면, 침대 근처였다면, 그 근처에 쌓여있는 읽다 만 책들 중 하나를 손쉽게 골라서 펼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때마침 밖이었기 때문에 전자책 앱을 뒤적거려야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서 늘 가방 안에 책 한 권을 넣어 다니곤 했는데 하필이면 오늘, 아마 오늘도 어제처럼 그냥 내 몸무게에 몇 그램 정도를 추가할 뿐이겠지 하는 마음으로 책을 빼놓고 온 터였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몇 그램의 무게도 짜증스러워진 이유였다.


실물 못지않게 많은 전자책을 가지고 있었고, 실물이 아니므로 더더욱 그 종류에 대한 가늠이 잘 되지 않았다. 종이책은 눈 앞에 얼씬거리는 것만으로도 채무감이 발생했기에 그 존재를 잊기란 쉽지 않았다. 반면에 전자책은 눈에도 안 보이고, 실물도 아니니. '스팀 게임 사고 안 하기'와 정확히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전자책들은 내 아이디 뒤편에 수북이 쌓아둘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아마 실물이었다면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을 그 전자책들을, 마음속으로 후 후 불어가며 살펴봐야 했다. 그러다 문득 읽다 만 오래된 소설책을 발견했다. 중고등학교 때는 밤을 새면서, 그것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던 소설책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미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이 이제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마치 고생물의 화석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는 한 번 완독 하기도 벅찬 그 수많은 책들이 줄줄이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순번이 당최 오지를 않아서 벤치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책이 몇 권일지. 오래 대기한 그 책들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책의 순번표에 의존해서만 책을 집어 들진 않았다. 연줄이 있는 책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말이다. 휴대폰에 이 오래된 책을 설치했던 몇 달 전의 나는 아마 그런 연줄을 이유삼아 이 책을 설치하고 말았을 것이다. '책'이라고 단수로 이야기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이 책은 시리즈 물이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라는 말이 유명한 책인데, 그런 책을 단수로 표현하고 있자니 뭔가 언어도단 같은 심정이다.


책의 진행도는 2권 중반부쯤에서 멈춰 있었다. 아마 설치할 때만 해도 옛날 생각도 나니 이번에도 한번 마지막까지 단숨에 읽어보자 기세 좋게 시작했을 것이다. 왠지 2권도 채 넘기지 못하고 끊겨있는 퍼센트 표시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나 역시 자신을 '나'라고 단수로 표현하고 있지만 과거의 '나'와 몇 달 전의 '나', 심지어 지금의 '나'는 전혀 단수가 아니었다. 몇 달 전의 나조차도 이미 책을 고르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읽는 방법, 그걸 내면화할 수 있느냐 없느냐 등 여러모로 학창 시절의 나와 확연히 달랐다. 그럼에도 마치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라도 한 양 무리를 했으니 그 끝이 '2권 중반부'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학창 시절과 확연히 구분되는 것은 아마 단연코 읽는 방법이었다. 학창 시절엔 속독이라 생각하고 활자 사이를 종횡무진, 폭주족처럼 내달리곤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방식은 수많은 디테일을 무시하고 큰따옴표와 큰따옴표 사이를 점프해 가며 읽는, 독서라고 하기도 민망한 것이었다. 그러니 나는 진즉 그 방식을 저 멀리 내던지고 찬찬히 한 글자 한 글자 씹어먹는 방식으로 독서 방법을 바꾼 터였다. 몇 달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문장 하나하나를 솎아내며 읽어 내려갔다.


옛날에는 그렇게 좋아하던 그 일인칭 방식의 유머러스한 문체도 지금의 눈으로 읽으니 마치 속옷만 체면치레로 걸치고 허겁지겁 나온 듯한 인상이었다. 그렇다고 재미가 줄어들진 않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 읽어 내려갔다. 물론 그랬다. 사실 어떻게 보면 더 흥미진진한 구석도 있었다. 마치 록맨의 사라지는 발판을 밟고 지나가는 순간처럼 문장 사이사이를 빠른 템포로 건너뛰며 읽었던 과거의 나는 수많은 문맥과 디테일을 놓치고 지나간 터였다. 그런 것들을 헨델과 그레텔이 흘리고 간 빵조각을 주워 먹는 동물처럼 야금야금 거리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아, 이런 내용도 있었나? 의 순간이 아, 이런 내용도 있었지. 의 순간들 사이에서 감칠맛을 더해줬다.


하지만 지금의 눈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부분도 많았다. 톡 튀어나온 돌부리들이 끊임없이 핍진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수많은 게임과 소설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풀어가다 보면 발생하는 전형적인 핍진성 부족들이었지만, 눈에 차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아마도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좀 더 현실적으로, 아마도 시니컬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어른이 된다는 건 참 재미없는 일이구나. 좋아하는 것에 좋은 마음을 그대로 품을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니까. 왠지 그런 생각들이 이어져서 결국 이번에는 2권도 채 다 읽지 못하고 책을 비활성화시킬 수밖에 없었다.


옛날과 같은 방식으로 이 책을 다시 읽을 날이 올까? 아마 올 수도 있겠지. 왜냐하면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 사이도 단수로 정의 내릴 수 없을 테니까.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 요량이었지만, 왠지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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