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104
사람은 자신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젓가락을 x자로 집고 있으면서도 그게 보편적인 용법인 줄로만 알고 반평생을 살아왔다던가.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린다. TV에서 젓가락질을 바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으로 사람들을 몰개성함 속으로 밀어 넣는 프로를 시청한다던가 하는 사소한 계기로 말이다. 그제야 '바르지 못한' 쪽에 속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충격을 받는다. 나에게 이런 엇나간 부분이 있었다니 하면서 말이다. 이쯤이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내 이야기였다. 난 그 후 아주 느리게 x자 젓가락질에서 보편적인 방식의 젓가락질로 변화했다. 그렇게 느리고 긴 시간이 흐른 지금, 이젠 오히려 x자 젓가락질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게 그만큼의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이었을까?
얼마 전에 또 깜짝 놀랄 사실을 알아차렸다. 젓가락질처럼 사소한 일이었지만, 프로그래머에겐 좀 덜 사소할지도 모를 그런 일이었다. 컴퓨터에 연관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중 인터넷, 그리고 또 그중 댓글에 대한 일이었다. 컴퓨터라면 그래도 빠지지 않고 활용한다고 생각하던 나였는데 사실은 무척 보편적인 것을 빼먹고 활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보편적인 행동이 뭐였냐면 바로 댓글이었다. 나는 일평생을 댓글 달기를 거의 없는 기능 취급하며 살아왔던 것이다. 대댓글 정도가 아니면 내가 주체적으로 댓글을 다는 것은 정말 손에 꼽을 일이었다. 멀쩡히, 그것도 아주 크게 달려 있는 그 댓글 입력 칸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없는 셈 치면서 인터넷을 활용해 왔다. 거시적으로 보면 인터넷의 절반의 기능만 활용해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계기란 그저 평범하게 인터넷을, 뉴스를 보던 참이었다. 모 정치인이 최근 크게 이슈화 되었다가 슬슬 사그라들기 시작하는 이슈를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는 그런 뉴스였다. 다들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정치 뉴스는 뉴스보다는 댓글을 보는 재미가 더 쏠쏠하다. 내용을 빠르게 훑으면서 스크롤을 슥슥 굴렸다. 댓글은 생각한 대로의 뭐 그런 원색적인 내용들이었다. 음 역시 그렇구만의 마음으로 댓글들을 훑다가 마지막에 다달았다.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댓글 입력란, 즉 나의 보편적이지 않은 성향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난 세상을 향해 주장을 펼치는 것이 불편했다. 예컨대 상대방의 마음을 끝의 끝까지 시뮬레이션해보느라 쉽사리 나의 주장을 내뱉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성향이 더욱 심해지곤 했다. 가깝지 않은 걸 넘어 완전히 처음 보는 그 누군가와 안면을 터야 하는 상황은 정말이지 지옥 같아서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그 데면데면함이란. 1분이라는 시간이 정적으로 가득 차서 1시간처럼 느껴지는 그 순간이란. 그럴진대, 인터넷을 사이에 둔 사람이라면 대체 나와 얼마나 먼 사람이란 말인가. 그 불특정의 타인의 마음은 헤아려 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아마 어느 순간 나는 댓글을 쓰는 것을 포기해 버린 것일 테다.
그렇다면 그 정치 뉴스 밑의 그 사람들은 대체 어떤 심정으로 그런 원색적이고 불가해하며 본인의 프레임에 갇혀있기만 하는 그런 댓글을 쓰는 걸까. 실제로도 그런 천편일률적으로 꽉 막히고 부족한 사람일까. 아마 그렇진 않을 것이다. 한낱 주사위도 면 하나만 보고 여섯 면의 모든 부분을 알 수는 없는 것처럼 아마 인터넷을 사이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그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댓글 하나 쓰는데도 실제로는 절대 헤아릴 수 없는 그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하려 드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완전히 반대편에 있는 그 사람들의 실체를 알아차릴 수 없었다. 노력해서 그들과 나 사이의 중간 지점까지 가게 된다면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될까? 이제는 완전히 보편적인 젓가락질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난 젓가락질 교정에 들어간 노력 그 자체에 의구심이 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