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건강 상식
1일 1커밋 #105
12시까지,라고 되어있긴 했지만 조금 일찍 갈까 싶었다. 경험 상 딱 맞게 가는 것보단 조금 일찍 가는 것이 대기 시간이 짧았다. 나는 TV에서 눈도 안 떼면서 언제 가느냐고 묻는 동생의 질문에 '조금 일찍 출발할까 한다' 대답했다. 그리고 물을 꿀떡 마셨다. 아침에 물 한잔을 마시는 게 건강에 이롭다는 말을 얼핏 본 이후로 되도록이면 물을 마시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오늘도 조금 노력을 기울여본 터였다. 근데 정말 아침에 겨우 물 한잔 마시는 정도로 몸이 좋아지긴 하는 걸까. 그걸 알 수가 없다는 게 건강 상식의 맹점이었다.
일찍 간다고 했지만, 결국 도착한 시간은 11시 55분. 이르다면 이른 시간이지만, 일찍 왔다고 생색내긴 애매한 그런 시간이었다. 누구에게 생색을 낼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병원 측에서 내미는 간단한 서류를 작성하고 겨우 한 자리 비어있는 의자에 엉덩이를 비벼 넣었다. 사람들은 마치 막 라벨이 붙은 갓 뽑은 혈액들이 일렬로 나란히 꽂혀있는 그런 형상으로 앉아 있었다. 나도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서 내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렸다. 끈적끈적한 기다림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그다지 가볍지 않은 것들을 굉장히 가벼운 어투로 물었다.
"알레르기가 있거나 복용하는 다른 약이 있거나 아픈 곳이 있거나 하진 않죠?"
아마 진찰을 목적으로 왔다면 내 대답은 달랐을 것이다. 여기가 조금 쑤시고요, 두통이 조금. 어제 잠을 제대로 못 자서 컨디션이 좀 안 좋은 것 같아요. 같은, 넋두리를 길게 늘어놓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기서 그런 짓을 벌였다간 본전도 뽑지 못할 것 같았고, 그래서 튀어나오는 말을 혀를 말아 꾹 눌렀다. 그저 고개를 끄덕였고, 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내 고갯짓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타이레놀 사뒀냐고, 안 샀으면 꼭 사가라고 당부했다. 당부조차도 깃털 같았다.
그리고 다시 끈적한 대기의 시간. 마치 혈청 분리를 마친 혈액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분리된 혈액들은 유용한 쓰임새라도 있지. 난 투덜거리면서 또 한 번 내 이름이 불려 오길 기다렸다. 그러길 얼마 후. 간호사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때문에 내 이름이 뭉개져서 들리기도 했고, 더군다나 내 이름은 너무 흔한 이름이었으므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야 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의자에 딱 붙어 있었다. 나만 엉덩이를 살짝 뗀 엉거주춤한 자세로 주위를 훑고 있을 뿐이었다. 간호사는 그 엉거주춤한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재차 내 이름을 불렀다.
먼저 접종을 마친 친구에게 주사의 통증에 대해 물었었다. 친구는 근육 주사랑 비슷하다며 근육 주사는 맞아봤냐고 되물었다. 나는 '아니, 안 맞아봤는데.'라고 대답했는데, 그러자 친구는 모 정치인의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 방법이 없습니다' 짤을 올려서 나를 폭소하게 만들었다. 뭐 어쩔 수 있나. 정말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맞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간호사가 앉으라고 가리키는 침대에 모로 앉았다. 차가운 알코올이 왼쪽 어깨 위를 한참 왕복하다가 묵직한 게 쿡 했다. 얀센 백신은 한참 동안이나 내 왼팔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나는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병원 앞에 조금 앉았다가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뭐야. 별거 아니잖아. 마치 아침에 물 마시던 딱 그만큼의 불편함과 효능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은 심정으로 밥을 먹고 조금 앉았다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호기로운 낮잠을 자고 난 이후. 그때부터 살살 머리가 아파왔고, 결국 그날 밤은 고통으로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