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106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속담이 있다. 관용적으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조금 의아한 말이다. 하늘이 무너진다면 대체 얼마나, 어떻게 무너진단 말일까. 상상력을 최대로 발휘해서 어떻게든 하늘을 무너뜨리려고 해 봐도 잘 되지는 않았다. 아마 세상 만물을 오감으로 느끼며 살아오던 우리 조상님들은 하늘도 분명히 촉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 상상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건물 천장이 무너지는 것과 완전히 같은 선상에서 하늘도 무너질 수 있으리라 여겼을 것이다. 천둥 번개 같은 게 우르릉 거리는 궂은 날씨 속에서 그 조상님들이 혹여 하늘이 와르르 무너져서 자신의 연약한 머리통을 박살 내진 않을까 서둘러 나무 밑으로 숨어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났다. 그럼에도 그 넓은 하늘이 무너지는 중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으리라 상상했다는 점은 감탄을 자아낸다. 저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독대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니. 그 광활한 것이 무너져도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하지만 막대한 자신감이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하늘이 무형의 것이고, 구름은 폭신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이 무너져도'라는 짧은 문장 하나 제대로 상상해낼 수 없었다. 뭔가를 안다는 건 반대로, 더는 상상할 수 없다는 걸 뜻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늘이 무너졌다. 내 하늘이 아니라 애인의 하늘이고, 진짜 하늘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무너진 건 사실이었다. 아무튼 절대 무너지리라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은 동일했다.
애인은 놀란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나무로 된 프레임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과 어수선한 거실, 그리고 조각조각이 나서 엉망진창이 되어있는, 한때는 천장이었던 석고보드의 형상들이었다. 애인은 석고보드가 갑작스럽게 떨어졌다며, 자칫 잘못했으면 죽을 뻔했다며 이모티콘으로 울상을 지었다. 혹여나 천장 바로 밑에 있었다면 집안이 난리가 난 것 그 이상의 큰일이 벌어질 뻔했다. 애인은 물을 잔뜩 먹은 천장이 '우지끈' 하는 소리와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며 문자로 발을 동동 굴렸다. 애인의 거주지는 아파트였다. 나는 사진으로 직접 그 현장을 보면서도 현실감이 없었다. 아파트의 천장이 '와지끈' 소리가 났다는 것도, 그게 과자 부스러기 같은 형상이 되어서 거실과 부엌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것도, 전혀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애인 집의 난장판 꼴을 다시 한번 구석구석 훑어보면서 천천히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애인의 거주지 천장이 난리가 난 것은 벌써 일주일도 전부터의 일이었다. 물이 새서 천장이 흠뻑 젖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고 했다. 위층과 집안 대소사를 모두 절충해야 하는 것도 일이었고,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천장이 떨어뜨리는 회색 물방울들도 일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니. 천장이 무너져 내리다니! 아파트의 천장이! 역시 믿어지지 않는 일이었다. 나는 사진을 다시 한번 꼼꼼히 살펴보았다. 애인은 '난민 꼴'이라고 비유했는데, 정말 집은 전쟁통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 수건과 말통들이 즐비했고, 뜯어진 벽지가 을씨년스러웠다. 그 와중에도 채광이 좋아서 집 안 곳곳이 밝고 화사한 것이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석고보드 위 나무 프레임이 훤히 드러난 천장은 잘 구워낸 고등어를 한 점 뜯어먹은 것만 같았다. 천장의 휑한 나무 프레임이 물에 젖어서 고등어 가시처럼 촉촉했다.
믿어지지가 않았지만 믿어졌다. 사진을 보면서도 믿어지지 않던 것이 사진을 보면서 믿어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었구나. 비록 아직 무너진 하늘을 다시 건재하게 만들기 위해 남은 일들이 태산이었지만, 아무튼 애인은 살아남았다. 옛 것은 정말 불합리한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곤 했는데 이번에도 딱 그 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