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나올 법한 유년시절

1일 1커밋 #103

by 김디트

누군가 100세 시대에 평생 직업을 하나만 가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늘어난 평균 수명은 직업 하나 정도는 충분히 더 욱여넣을 수 있는 분량이라는 의미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주장이긴 했다. 애초에 전통적인 직업들의 퇴직 시기는 인간이 100살 씩이나 살 거라고 상정하고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퇴직 이후 연금으로 연명하며 무료하게 인생을 축내는 것은 곧 우울증으로 이어진다고도 하니 두 번째 직업을 가지는 것은 그에 대한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막상 두 번째 직업을 가져야 할 그 시기가 다가올 때가 된다면 그 시절에도 아직 나에게 그를 감당해낼 체력이 남아있을 것인가. 그런 의문이 떠오른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서른 남짓이면서도 체력 운운하며 등을 두드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젊은 지금도 당장 이직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라면 치를 떨 것이 분명한데, 지금보다 체력이 훨씬 떨어졌을 그 노년이 되어선 더 큰 스트레스가 아닐까. 결국 감당할 수 없는 게 아닐까. 한참을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이어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도리 도리 했다. 사실 이런 생각들도 나의 노년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우리 엄마는 평생 몇 가지나 되는 직업을 거쳐왔다. 새로운 직업을 거치는 시기는 그야말로 다이내믹해서,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전혀 맥락도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전업 주부로 시작해서 내가 초등학교(국민학교였지만)에 들어가자마자 아기 옷 장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하자 장사를 접고 자동차 공장의 단순 작업에 투입되었다. 일이 있다가 없다가 하던 시기를 거치고 난 후, 아빠와 함께 고깃집을 오픈했고, 몇 년간 아빠의 히스테리를 바로 그 옆에서 버텨내다 결국 떨어져 나와 어묵 가게를 오픈했다. 이 모든 직업들이 엄마의 내면에 체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왠지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는 아직, 이제야 첫 번째 직업을 가진 터였다. 그런 주제에 나도 이젠 다 자랐네, 하고 있으니 왠지 대학교 새내기 때의 그 자만심이 떠올랐고, 그래서 괜히 겸연쩍어졌다.


떠올려보면 엄마는 늘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에는 두 팔을 걷고 기꺼이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었다고나 할까. 아마 그 덕분이었을 것이다. 나의 유년시절에 폭력과 결핍 같은 것이 끼어들지 않은 것은. 아마 온전히 엄마의 최선 덕분이었다.


어느 날 애인은 나에게 '넌 평생을 사랑받고 살아온 것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는 많이 어렸고, 그런 식으로 내 삶을 반추해본 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하며 '그런가?' 하는 정도의 반응을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 눈이 수많은 '전형적이지 않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되면서 나는 점차 애인이 했던 그 말을 이해해 나갈 수 있었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삶이 있었다. 대부분은 고통과 아픔과 외로움 같은 것들이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삶과 진짜 삶 사이를 수문장처럼 떡하니 가로막고 있었다. 그런 삶들이 내가 조금만 신경 쓰면 알아챌 수 있을만한 곳에 널려 있었다. 그 삶들을 훔쳐보면서야 알 수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준 유년시절이, 교과서에 실릴 만한 전형적임이라는 게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말이다. 엄마가 가끔 나에게 생색내듯 '그래도 너한테 부족한 것은 없게 해 주려고 노력했다'라고 하곤 했는데, 실은 그 말의 뉘앙스 이상의 최선을 나에게 쏟아부어 왔던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를 기를 때, 세상의 좋은 것들만 경험할 수 있도록 열심히 내 앞에서 거름망을 펼치던 그 시절의 엄마는 지금 내 나잇 대였다.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 삶도 벅차서 두 번째 직업을 가지는 게 정말 가능한 건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정말로 그런 최선을 타인에게 쏟아부을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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