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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과 그 고통스러운 경계에 대해

1일 1커밋 #113

by 김디트

요새는 아침 7시 반에서 8시 사이에 일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왜 그 시간이냐면, 9시 반에서 10시 사이까지 출근하기 위해서. 출근 시간이 2시간이나 걸리는 건 아니었다. 단지 아침의 한 시간 정도는 나를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원래의 기상 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의 여유를 둔 것이었다. 그 시간이 바로 7시 반에서 8시 사이였다. 한 달에서 두 달 정도, 억지로나마 일찍 일어나려고 바둥거리다 보니 이제 조금 익숙해졌다. 당연하지만 익숙해졌다는 말이 쉬워졌다는 말은 아니었다. 여전히 난 아침마다 바둥거렸다. 신경질적인 손짓으로 알람을 끄고 침대 위로 상체를 일으켜서 굼뜬 미어캣처럼 느릿느릿 두리번거렸다. 눈곱을 떼어내고 하품을 연거푸 했다. 침대 위로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등쿠션을 질질 끌고 와서 벽에 단단히 고정시키고 편안히 몸을 기댔다. 일단 거기까지 했으면 다시 잠들 걱정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아침을 시작하는 관성이 붙기에 충분한 공회전이었다.


결국 오늘도 어떻게든 그 한 시간 여유를 챙긴 아침을 보내긴 했으나, 여전히 너무 어려웠다. 아침에 겪는 그 일련의 고통도 그렇지만,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 전날 밤의 또렷함도 어려웠다. 12시 남짓이 그렇게 이른 시간은 아님에도 내 맑고 청명한 두뇌는 '아직 잠을 잘 수 없다'라고 비명을 질러대곤 했다. 마치 덫에 걸린 산짐승처럼 두개골을 부술 듯이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 대체 그 어린 날, 10시 이전에는 자야 했던 그때는 대체 어떻게 이 걸걸한 산짐승 같은 두뇌의 난동을 잠재울 수 있었던 걸까. 어릴 때의 활발함, 지치지 않는 체력 같은 걸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텐데. 그런 시시콜콜한 생각까지 들 정도로 힘겹다. 결국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다면 반 정도는 성공한 셈이다. 나머지 반은 운에 맡겨야 한다. 운 나쁘게도 눈을 감은 곧장 잠들지 못하는 밤이라면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독방에 감금된 죄수처럼 몸은 움직일 수 없고, 생각만이 선처럼 계속해서 이어진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이대로 눈만 감고 있다고 잠이 들 수 있는 걸까. 이러고 있기보단 그냥 일어나 뭔가 하면서 체력을 조금 빼두는 것이 깊은 수면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닐까. 악마의 유혹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런 명목으로 일어나서는 결국 하게 되는 것이라곤 웹서핑, 캐주얼 게임 같은 정적이고 체력이 들지 않는 일이었다. 그런 '킬링 타임'에 마음을 빼앗기면 정말 돌이킬 수 없다. 새벽 3시쯤이 되어서야 번뜩 정신을 차리고는 아 정말 망했다, 참담한 심정만 남은 채 다시 이불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결과가 되고 만다. 그런 실패를 다시 맛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제대로 정신 차리고 정신을 잃어야 하는 것이다.


그 힘겹고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결국의 결국에는 어떻게든 수면에 들어선다. 하지만 그 행복도 잠시. 이내 아침이 찾아온다.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은 아침의 그 느릿하고 신경질적인 기상 시간을 겪게 된다. 시작도 끝도 고통스럽지만, 이상하게도 그 과정은 정말 편안하다. 깊은 수면 중에는 정말 이대로 죽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따뜻한 물에 푹 잠겨서 뽀글뽀글 숨을 뱉어낼 때의 감각과 비슷하다. 아마 기상이 그렇게 힘든 이유는 아직 채 깨어나지 못한 정신에 수면 중의 그 포근함이 잔열처럼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그 기상의 고통을 겪으면서는 문득 이런 기시감이 들었다. 이 경계 경계마다의 고통을 분명 언젠가 겪어봤는데. 언제 이렇게 힘들었더라. 사실 깊게 되짚어볼 필요도 없었다. 이를테면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의 경우도 그렇다. 쓰기 전에는 정말로 내가 오늘 글을 쓸 수 있을까,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한다. 그 경계를 지나치고 나면 마치 결정적인 매듭을 푼 실뭉치처럼 술술 풀린다. 도저히 글을 멈추고 싶지 않다. 그런 기분으로 계속 키보드를 두드린다. 그러다 글을 끝맺어야 할 때가 다가오면 결국의 결국, 퇴고할 때 걷어내야 할 쓸데없는 미사여구를 한 글자라도 더 쓰려고 바둥거린다. 글의 경우처럼, 코딩도, 그림도, 운동도, 조금이라도 집중을 요하는 그 어떤 일들에는 모두 어김없이 경계선에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내 삶이 왜 그렇게 늘 고통스러운지. 그리고 그 고통과 고통 사이에는 왜 늘 행복이 있었는지.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재귀적인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지 따위들이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인생 전반을 '수면의 과정'으로 설명할 수 있다니, 만약 어떤 의도에 의한 바였다면 이것 참 재치 있는 농담이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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