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과 배움과 마인드와 프로
1일 1커밋 #114
가르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잘 배울 수 있다. 그렇다고들 한다. 아마 분명 그럴 것이다. 왜 추측성 짙은 말투를 사용하냐면, 사실 가르침을 잘 받아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가르침이라는 게 나를 비껴가고 난 이후에야 학습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드라마가 클리셰처럼 사용하는 그 장면처럼. 이를테면 공항. 북적거리는 사람들. 연인은 간발의 차로 서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시선을 돌려 각각이 왔던 곳으로 교차되어 걸어간다. 뭐 그런 안타깝고 답답한 상황이 나를 향하는 가르침의 시점과 내가 진지하게 학습을 바라보게 되는 시점 사이에서 벌어진 셈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얼마 전쯤의 일이다. 나는 갑작스럽게 떨어진 큰 시련에 당황해야 했다. 지금까지는 친구들이 하던 방식을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어쨌든 상황이 흘러가긴 했다. 결국 그때 마주한 구직이라는 시련은 내 삶을 마치 영화라도 보듯 방관해온 대가였다. 예견된 미래긴 했지만 정말 그런 시점이 나에게 찾아올 줄 몰랐던 나는 크게 당황했다. 아마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난 분명 그때처럼 당황할 것이다. 사막에 덩그러니 던져진 심정으로 고향, 경주로 내려갔다. 몇 개월간 아빠가 운영하는 고깃집에 일손을 더했다. 그리고 다시금 깨달았다. 대학교에 가고는 한동안 마주하지 않아도 되었던 현실, 난 아빠와 도저히 붙어서 생활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난 치를 떨며 취직 준비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연고도 없는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이력서를 준비했다. 적을 게 없었기 때문에 결국 이력서에 적을만한 것을 공부해야 했다. 내가 처음으로 내 학습의 성과에 통탄했던 시점이 바로 그쯤이었다. 학습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 시점도 포함해서 말이다. 이렇게 되새기고 보니 아빠의 히스테릭함이 발단이었다. 이런 아이러니함이 또 있을까. 시련은 나아갈 힘을 준다는 말은 사실이었지만, 그 시련에 감사할 일은 아마 평생 없을 것 같다.
그런 경위를 거쳐서 나는 내 쪽에서도 원하고 반대쪽에서도 제공해주는 그런 양일합치의 상황을 완전히 빗겨 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누군가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단지 생각만 하면서 독학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독학은 불편했지만, 분명 편한 점도 있었다. 이를테면 효율을 완전히 빗겨 난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해도 아무도 꼬투리를 잡지 않는다거나. 편했다. 편하지만 장점은 아니었다. 결국 몇 년의 시간을 허비해서 깨닫곤 했으니까. 고집부리며 하지 않던 그 방법들이 모조리 고속도로였고 내가 지금까지 지나온 그 아집의 흔적들은 비포장도로였다는 걸 말이다.
그 정도로 매운맛을 봤으면 조금은 정신을 차리게 된다. 독학이 운동에 이르러서는 이제 그 매운맛에 꽤 길들여진 상태였다. 내 독단적인 판단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그럴 필요도 없었다. 나에게 가르침을 줄 사람이 워낙 많았으니까. 유튜브는 옛날, 상당한 금액을 치르고서야 겨우 볼 수 있었던 운동 비디오보다도 더 많고 질 좋은 정보를 제공했다. 숫기 없고 새로운 타인과 관계를 맺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나에겐 참 좋은 세상이었다. 배달마저도 앱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해결되는 세상이라니. 어릴 때, 아무 두려움 없이 중국집에 전화해서 나의 주문 사항을 떳떳이 요구하는 내 자란 모습을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는데 결국 그 예견대로 된 셈이다. 나는 운동마저 비대면으로, 상호작용 없는 일방적인 형태로 사사하였다.
최근 보는 유튜브 채널은 운동의 외적인 면도 그렇지만 내적인 면도 상당히 깊이 다루고 있었다. 이를테면 '반복은 훈련이 아니다' 같은 주제를 여러 예를 섞어서 설명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비포장도로를 덜컹거리며 지나온 나로선 고개를 끄덕이며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다. 깊이 감명받은 건 덤이었다. 난 얼마 안 되는 지인들에게 그 영상을 소개하며 '반드시 봐야 하는 영상'이라며 발을 동동 굴리곤 했다. 운동의 프레임을 걷어내고 봐도 정말 정말 좋은 영상이라고, 내가 지나온 비포장도로를 눈물을 흘리며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 채널의 영상을 보면서 '훈련'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영상은 마인드에 대한 이야기를 곁다리처럼 끼워 넣고 있었다.
"마인드가 선행되어 프로가 되어야 몸도 프로가 될 수 있어요."
그 말에 딱 운동을 멈추었다, 거나 하지는 않았다. 신성한 훈련 중이었으니까. 하지만 뭔가 내 마음을 훑고 지나간 것은 분명했다. 그는 '운동'이 아니라 '프로'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마인드가 먼저 프로가 되어 있는 것일까. 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을까. 꽤 자주 '프로'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생각해 봤을 뿐, 현실의 나는, 내 마음가짐은 그다지 '프로'같진 않았다. 팀장님이 가지고 있는 그런 책임감, 의지 같은 것들이 결여되어 있었다. 아마 팀장님도 날 때부터 그런 것들을 갖추고 있진 않았겠지. 나보다 이른 시기부터 '프로가 된 것처럼' 행동해왔을 것이다. 프로처럼 행동하는 훈련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했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니 왠지 몸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물론 가만히 두고 있지도 않았지만. 나는 풀업을 나머지 한 개 더 당기고 헉헉거리며 1분 타이머를 눌렀다.
저번 주 금요일이었다. 일정 마감이었고, 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던 일정은 어김없이 문제가 생겼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퇴근을 강행해도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단지 프로가 아니게 될 뿐. 하지만 난 프로였다. 프로의 마음을 먹어야 했다. 퇴근 욕구를 꾹 참고 회사에 남았고, 밤 11시가 되어서야 프로가 될 수 있었다. 일일 프로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