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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만지면 만질수록, 안마를 하면 할수록

1일 1커밋 #115

by 김디트

애인은 가끔 나의 몸을 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그 표정을 보면 애인이 곧 어떤 말을 할지 금세 읽을 수 있었다. 나는 뭔가 실수를 하고 흰자위를 보이며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의 표정을 지다.


"또 다쳤어?!"


난 쉽게 다쳤다. 몸가짐에 조심성이 없어서일까, 조금만 긴장을 풀면 어김없이 피를 봤다. 일생동안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의 몸을 구석구석, 빠짐없이 훑었다. 그래서 이제는 어떤 흉터가 어떤 일 때문에 생겨났는지도 가물가물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수많은 흉터들에 얽힌 잃어버린 그 스토리들은 잘 엮는다면 책 한 권은 너끈히 될 듯 보였다. 애인과 함께 한 시간이 시간인지라, 애인 눈총과 함께 자리 잡은 흉터도 여럿이었다. 아마 그들도 소책자 월간지 분량 정도는 될 것이다. 이미 흉터가 많으니 그래서 상처에 무덤덤해지는 걸까, 아니면 상처에 무덤덤해서 흉터가 많은 걸까. 조금 궁금했다. 그렇지만 그 문장을 풀어헤칠 마음은 없었다. 난 늘 '조심성이 없다'는 편리한 핑계로 늘 그 뫼비우스의 끈 같은 문장을 슬며시 빠져나가곤 했다. 흉 지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인즉, 슬슬 끓어오르는 냄비 안에서 천천히 익어가는 개구리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는 징조임에도 그랬다.


흉이 지는 이유는 물론 애초에 상처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나의 나쁜 손버릇 때문이기도 했다. 난 안 좋은 버릇을 제법 가지고 있다. 손톱을 깨문다던가, 다리를 떤다던가, 혹은 딱지가 앉은 상처를 만진다던가. 딱지를 자주 만지면 흉이 진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하지만 난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 상식 없음은 정말 많고 짙은 흉을 만들어냈다. 왜일까. 딱지를 만지면서 점차 치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확인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불안했다. 딱지가 완전히 자리잡기 이전까지는 되려 괜찮았다. 상당히 잘 굳어서 아 이젠 정말 낫고 있구나 싶은 시기가 되었을 때야 나의 나쁜 손버릇은 또다시 고개를 치켜들곤 했다. 손톱을 세워서 마치 요구르트 뚜껑이라도 따듯 살살 긁는다. 아프다 싶으면 얼른 그만둬야지 싶으면서도 막상 점진적으로 따끔거리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고 나면 거스럼처럼 거슬리게 툭 튀어나와 있는 그걸 만지길 멈출 수 없었다. 그 묘한 돌출이 거슬리기도 했거니와 정말 아직 덜 나았나? 아마 그걸 믿을 수 없어서였을까.


얼마 전엔 특이한 안마기를 샀다. 그 옛날, 톡톡 두드리면 딱딱 소리가 나는 딱딱한 돔 형태의 고무가 둘, Y자 플라스틱 끝에 각각 달린, 어린 나는 도저히 효용성을 알 수 없던 그 도구형 안마기는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말 많은 종류로 분화되었다. 옛날보다 현대가 더 안마기가 필요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타인의 손을 빌리기 힘든 세상이 되었으니까. 시대 뿐 아니라 소심한 기질까지 타고난 덕에 나도 제법 많은 종류의 안마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하나같이 그다지 오래 쓰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산 건 정말 진득하니 써봐야지 싶었다. 이번 월요일에는 조금 적극적으로 안마기를 사용했다. 손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자극이었지만, 안마기로는 훨씬 적은 힘으로 그 자극을 만들어냈다. 어느덧 나는 신이 나서 틈만 나면 안마기로 경추를 쑤셔 눌렀다. 쉬워진다는 건 쉽게 과해진다는 말과 같았다. 너무 신나서 과하게 자극을 줬던지 하루 종일 목이 뻐근했다. 뻐근한 걸 풀려고 한 안마가 더 묵직한 뻐근함을 안겨준 셈이 되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앞으로 푹 숙였다, 뒤로 한껏 재쳤다 스트레칭 하면서 울상을 지었다. 상처를 자꾸 만지면 흉이 지듯, 뭉친 근육도 자꾸 주무르면 흉이 지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상처든 뭉친 근육이든, 어떤 낫는 과정의 상처든 굳이 들쑤시지 말고 가만히 놔둬야겠다. 굳은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근데 원체 상식이 없어놔야 말이지. 난 뒤통수를 긁으면서 미래의 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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