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고 싶을 때는 장소를 옮기자

1일 1커밋 #140

by 김디트

집중이 잘 되지 않을 때는 장소를 바꾸어보라. 이 얼마나 진부한 말인가. 너무도 너무도 당연한 말이다. 어디 뻔한 말들을 잔뜩 적어둔 블로그 글귀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말이다. 그다지 귀담아 들어지지 않는다. 다 아는 사실 아냐. 귀를 후비후비 후- 하며 잔소리 듣기 싫어 스탠스를 취한다. 사실 진부하고 당연할수록 옳은 말씀이다. 귀담아듣고 행해야 할 텐데 그게 영 쉽지 않다. 내일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침대로 차마 기어 들어가지 못하고 다음 유튜브 하나만, 또 다음 거 하나만, 진짜로 마지막,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격이라고나 할까. 왜 심리는 무척 당연한 말에는 꼭 당연한 반발이 일어나도록 구성되어 있는 걸까. 놀라울 정도로 비효율적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비효율적이기에 끊임없이 효율을 갈구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저번 주는 일주일 내내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지속해야 하는 일들이 있었고, 그래서 컨디션은 끊임없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금요일, 약속이 있어서 우리 집으로 온 애인은 나의 얼굴을 보고 정말 화들짝 놀랐다. 그토록 초췌한 얼굴은 처음 봤다는 것이다. 눈이 왜 숫자 3 모양이냐며 물어왔다. 웃을 힘만 겨우 짜낼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흐흐 웃었지만, 그 웃음마저도 상당히 가냘픈 것이어서 히흫만 겨우 소리 낸 수준이었다. 애인과 함께 보낸 토요일을 지나고 맞이한 일요일엔 도저히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어디 잘 수 있는 데까지 자보자 작정하고 누워 있었고, 그래서 오후 두세 시에야 기상할 수 있었다. 힘이 없어서 할 일이 하기 싫은 걸까, 할 일이 하기 싫어서 힘이 없는 걸까.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다음으로 최고의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컨디션이 안 좋을 때엔 해야 할 일들이 정말 무자비하다. 무자비하게 나의 마음을 짓누른다. 언제건 나를 압박할 질문을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있는 면접 결정권자 같다. 일정을 채 마치지 못한 채 하는 모든 사소한 일들은 그 압박 아래 짓거리화 되곤 했다. 심지어 식사나 설거지 같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마저도 그랬으니 그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설거지를 박박 하다가도 어느 순간 '아, 이 시간을 아껴서라도 오늘 분의 코딩을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나는 마음이 급해진다. 조급증이라도 걸린 사람처럼 후두루찹찹 설거지를 끝낸다. 설거지하는 시간을 다 합해도 저녁,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시간보다는 짧을 텐데. 정말로 능률을 찾아야 할 곳에서는 현실을 외면하기 바쁘면서 은근히 능률을 챙길만하다 싶은 곳에서는 과감해진다. 비효율의 절정이라고 할 만하다. 실은 알고 있었다. 노는 시간을 아껴서 할 일들을 해나가면 된다는 사실. 그렇지만 그 당연한 사실은 역시 또한 너무나 당연해서 눈을 흘기게 되는 것이다. 누가 그런 말을 했다면 안다고 당연하잖아, 분개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일요일 밤,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굳이 행동으로 옮겼다. 할 일들의 무게에 치여서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핸드폰을 할 시간에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늘 나가기 전에는 이런 합리적인(척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가서 할 것도 없는데 왜 나가는 건지. 산책할 시간에 코딩이나 한 줄 더하는 게 이득인데. 나가면 코딩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미래의 나를 포기하는 걸지도 모르는데. 뭐 그런 생각들이다. 자주 그 생각들에 설득당해서 집에 눌러앉곤 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말의 마지막 밤을 허비하고 고통스럽게 월요일을 맞이하러 침대로 기어갔다. 하지만 나가기만 하면. 장소를 바꾸기만 하면. 그러면 나를 옥죄는 그 습관 같은 효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번에 장소를 바꾸고 나에게 집중해서 알아낸 게 뭐냐면, 물구나무서기 연습을 너무 과하게 하면 경추에 무리가 가고, 그래서 두통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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