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이불속으로

1일 1커밋 #15

by 김디트

그렇게나 지속적으로, 계획적으로, 일상적으로 들어온 소리인데도 디테일한 음정이 기억나지 않은 소리가 있다. 뭐였더라, 머리를 짚고 고민해 봐도 역시나 떠오르지 않는다. 멜로디는커녕 피로감만 몰려왔기에 이내 떠올려보기를 멈춰야 했다. 그러니까, 알람 소리에 대한 이야기다.


나도 옛날에는 매년 초,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다이어리를 사고 꾸미는 심정으로 신중하게 알람 소리를 설정하던 적이 있었다. 피쳐폰 시절이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알람 소리를 설정하는데도 품이 많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 중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후, 적절한 프로그램을 통해 적정 구간을 잘라낸다. 이 고된 과정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이다. 용량의 제한이 있었으므로 음질과 길이의 적정 비율을 잘 선택해야 했다. 그런 열정을 쏟아 형식에 맞는 링톤 파일로 만든 후, 삼각형 모양이 마치 옛날 울트라맨의 가슴에서 반짝이는 모양으로 빛나는 TTA 24핀 to USB에 핸드폰을 찾아 꽂는다. 그리고 각 핸드폰에 맞는 소프트웨어를 찾아 설치한 후 컴퓨터와 핸드폰이 접속되길 기다린다. 드라이버의 정밀함이 떨어진 탓일까, 운영체제의 치밀함이 부족했던 탓일까,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핸드폰 접속 실패가 뜰 확률이 정말 높았다. 이 부근이 이 고된 과정 중에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구간. 이 구간에선 떠난 애인에게 질척거리는 심정으로 몇 번을 매달려 봐도, 결국엔 5할의 확률로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처절한 고통을 감내하며 반복, 또 반복을 통해 나머지 5할의 확률을 통과하여 컴퓨터와 핸드폰 접속에 성공하면, 성취감이 그야말로 별처럼 쏟아진다. 잠깐이지만 눈을 감고 그 순간을 음미하고 싶어 진다. 그 이후의 과정은 그저 식은 죽 먹기. 휴대폰에 넣고, 알람을 설정한다. 끝.


떠올려보면 그렇게 고군분투하던 때, 나는 짜증과 기대가 범벅이 돼서 가슴을 벌렁거리며 절대로 다음엔 다시 절대 안 한다 매번, 정말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그렇게 다짐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난 몇 번이나 그 과정을 반복했고, 지금에 와서도 프로젝트에 잘 붙지 않는 서드 파티를 붙이려고 노력하고, 제발 돼라 돼라 기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도전하는, 짜증과 기대의 범벅을 반복하고 있다. 아직 이럴 줄 알았다면 그때 더 철저히 짜증내고 기대하고 반복할 수 있었을까.


그 반짝이는 성취감은 길게 이어지지 않는다. 난 좋아하는 음악을 알람으로 설정하면 누구나 겪는 결과에 이내 도달하고야 말고, 결국 나의 실착을 인정하고 알람 소리를 기본 소리 중에서 하나로 돌려야 했다. 마치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라면 참새가 재잘거리고, 햇살이 창가를 가만히 비추고, 그 가운데 나는 눈을 비비고 기지개와 함께 상쾌하게 아침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하지만 그건 TV 광고 속에서나 나오는 환상에 가까웠고, 실제의 나는 마치 '사랑의 블랙홀'의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몇 번이나 알람을 미루기 위해 핸드폰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해야 했다. 제발, 제발, 누군가 이 알람을 멈춰줘! 이불을 덮어쓰고 비명 지른다. 좋아하는 음악이 히스테릭하게 들리는 경험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게 마련이다.


몇 번의 그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알람 소리에 무던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십수 년이 지난 후의 나는 이제 기억도 나지 않는 알람 소리에 부스스, 눈을 뜨고, 세수를 하고, 로션을 바르는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친 후 주섬 주섬, 회사로 갈 채비를 한다.


2021년, 첫 출근일. 회사로 안 갈 수도 있었지만, 어쨌건 새해 첫날부터 회사 동료들과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건 큰 실례라도 저지르는 기분이었기 때문에, 롱 패딩에 손을 찔러 넣고 문을 나서야 했다. 찬 바람이 뺨을 찰싹 때리고 지나갔고, 나는 퍽치기라도 당한 듯 얼떨떨했다. 대체로 아침 출근길은 멍한 기분이다. 알람 소리를 듣고 짜증 내며 연거푸 구글 홈의 대가리를 때려댔던 것이 마치 꿈결처럼 느껴진다. 알람에 잔뜩 성이 났던 나는 어느샌가 온데간데없다. 그는 분명 나의 의지가 아니라 이불속 노곤 노곤함이 나의 몸을 조작했던 탓일 것이다. 이불속 노곤 노곤함은 왜 그렇게나 알람 소리를 싫어할까. 내가 출근한 동안에는 마치 개와 원숭이처럼 서로 으르렁거리며 서로의 끄트머리며, 구글 홈의 꼬랑지 같은 전선 꼬리를 물고 뜯고 하는 건 아닐까.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는 완전히 마음을 추스른다. 플래너를 꺼내고, 오늘 할 일을 정리하고, 커피를 한 잔 내려와서 차분히 모니터를 응시한다. 커피가 정신과 함께 호로록 흘러 들어오면 그제야 키보드에 손을 탁, 얹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할 일을 체크하고, 하나하나 할 일을 처리해 나간다. 그러다 보면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이다. 알림에 대항하여 일어나, 회사로 가야겠다 마음을 먹는 고비 같은 건 사실 게임의 엔딩을 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가야 하는 레벨 노가다 같은 것임을.


그래도 알림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디테일하게 기억하고 싶은 생각은 그다지 들지 않았다.


22. 01. 04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청학동에서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