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제작 실패기

1일 1커밋 #16

by 김디트

나는 어릴 때부터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미술 시간에 찰흙을 조물 거리면서, 내 머릿속에만 들어있던 무언가를, 그 형체를, 유형화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물론 뇌가 만들어달라고 하청 준 것이 여러 신경 조직의 하청을 거치며 마지막 하청, 손가락에서 '시간과 예산이 부족해서'의 결과물로 나타나곤 했지만, 그때는 그런 실패의 디테일한 요소들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튼 무언가, 내 상상에서 비롯된 무언가를 세상으로 내보낼 수 있다는 점이 중요했다.


동생이 종이학을 접어서 병에 모아보고 싶어 하길래 나도 같이 접어보기로 마음먹은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아마도 아랫집 형과 누나에게 종이학, 알 따위를 접는 법을 이미 배워 알고 있었던 탓에 유세를 좀 떨어볼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첫 종이학엔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을 듯 신중했다. 결과는 신통찮았지만. 그리 금새 접은 수에 대한 집착과 퀄리티의 우선순위는 반전되었다.


간혹 생각날 때마다 종이학을 접어 나갔다. 병에 채워지는 종이학의 수에 반비례하여 신중 정확히 접는 시간은 점차 짧아졌다. 10분에서 5분, 5분에서 1분, 1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간혹 업계 3, 4년 차가 가장 위험한 시기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자면 겨우 3, 4년 쌓은 정도의 경험으로 업계의 모든 것을 파악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만심이 가득 차고, 그 때문에 간혹 큰 실착을 하곤 하기 때문에. 그때도 이를테면 이 3,4년 차 병에 걸린 게 아니었을까. 고작 일주일 내외에 그런 심각한 질병을 앓다니, 어린 시절 나의 면역 체계는 참 엉망진창이었던 모양이다. 학이 쌓여갈수록 나는 미약한 흥분 상태에 빠졌으며, 손가락이 빨라졌다. 퀄리티는 끊임없이 하향 곡선이었다. 별별 기형적인 학들이 다 튀어나왔다. 왼쪽 날개가 절반 이상 짧은 놈, 대가리가 다 뭉개진 놈, 등이 푹 꺼져서 배와 등이 말 그대로 딱 붙어있는 놈.


결과적으로 병을 가득 채울 순 있었다. 얼핏 보기엔 형형색색 알록달록했지만, 뚜껑을 열면, 마치 관리되지 않은 양계장이라도 방문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후로도 끊임없이 그 학 더미 같은 것들을 생산해 냈다. 좋은 것을 보고 느끼고 감상한 후엔 어김없이 이미테이션 생산의 욕구를 느꼈다. 기민함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아마 재빠르게 복제 생산한 중국 게임 같은 위치라도 점할 수 있었으련만. 하지만 내가 만드는 것들은 항상 몇 발자국 느렸고, 그나마도 완성이 되지 않은 적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써 생각했다. 그냥 취미니까. 아직 공부하는 중이니까. 그러다가 어느새 그런 핑계도 댈 수 없는 상황이 와버리고 말았다. 나는 또다시 애써 침착하게 변명을 생각한다. 그러니까, 음, 그게, 응. 회사 일이 아니니까.


변명으로 일관하는 만들기일지라도, 그래도 만들기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글, 그림 등 여러 가지 만들기들이 있지만 특히나 게임은 나의 모든 역량을 끌어모으지 않으면 만들 수가 없다. 프로그래밍, 아트, 기획, 사운드 등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차고 넘친다. 그렇지만 지극히 편향적인 나에게 평균적인 능력을 요구해봤자. 난 재밌어 보이는 것만 선별적으로 하느라 정말 해야 할 일은 트랠로 저 끝으로 휙휙 밀어버리곤 했다.


커피를 내릴 때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어느 날 좋은 주말 오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드립을 했다. 예컨대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다. 커피잔을 데우기 위해 따뜻한 물을 담아둔다. 원두를 적당한 분쇄도로 위이잉 갈아낸다. 그리고 포트를 기울여 나선형으로 물줄기를 내린다. 3분 안쪽으로 내리도록 집중해서, 딱 내가 생각한 농도로 내린 후, 탁탁. 드리퍼를 다른 컵으로 옮기고, 물을 비우고 따뜻해진 커피잔으로 조심해서 서버를 기울이면, 커피 완성. 나는 커피 향에 코를 벌름거리며 소파에 눕듯이 앉는다. 그리고 커피를 한 모금 머금는다. 음, 괜찮네. 하다가 아니, 잠깐. 커피를 꿀떡 삼키면서 양 눈썹을 시소라도 탄 듯 위아래로 흔든다. 끝 맛으로 기분 나쁜 쓴 맛이 강하게 올라오는 것을 캐치한 탓이다. 나는 입맛을 다시며 커피잔을 가만히 노려본다.


늦은 저녁, 동거하는 선배가 돌아온다. 선배는 경력이 긴 바리스타였기에, 나는 지체 없이 물어본다.


"오늘 내린 커피 왠지 쓰던데. 왜 그럴까요?"


"어떻게 내렸는데?"


내가 설명하는 과정을 찬찬히 듣던 선배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답한다.


"원두가 조금 지난 거 같은데. 온도 조절을 좀 하면 좋을 거 같다."


그제야 지금까지 커피 포트에는 온도계가 끼워져 있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아, 장식 아니었나? 이내 선배는 직접 시범을 보여주는데, 머핀이 잘 올라오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온도를 조금 낮추고 드립을 좀 더 빠르게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제법 프로다운 행색으로 솔루션을 제시한다. 나는 찝찝한 기분을 감출 도리가 없다.


내 작업물 안에도 아직 지적받지 않은 '수온' 같은 게 마구 산재해 있다. 특히 이벤트들, 수많은 맵을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구성되어야 하는 그놈의 이벤트들은 마치 버려진 흉가처럼 여기저기 꼴불견으로 흩어져 있다. 예컨대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거실 바닥에 와르르 쏟아 놓기라도 한 듯한 모습이다. 그 흉물스러운 꼴은 정면으로 마주 보기에도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정성과 디테일함을 게임 제작에도 쏟아부어야겠다. 왕왕 그런 결심이 설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러다가 운 좋게도 오늘은 '플로우 차트'라는 키워드에 다다랐고,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주위에 흩어져 있는 장난감 한 두 개나마 상자에 옮겨 담았다. 겨우 몇 개 치웠을 뿐인데, 왜 이리도 마음이 가뿐해지는지.


하지만 그러길 수분 째. 엉덩이가 들썩거리고,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이내 '이건 회사 일이 아니니까.' 하는 마음이 또 꿈틀 하더니, 온천이라도 터진 것처럼 부지불식간에 솟구친다. 마우스 커서가 구글 크롬 쪽으로 코로나처럼 옮겨가고, 빠르게 탭이 증식되어 간다. 역병은 유기물의 형태로만 존재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문득 정신을 차린 나는 수없이 증식한 크롬 탭을 묵묵히 바라보며 찝찝한 기분을 감출 도리가 없다.


그 결과, 오늘의 게임 제작 기록도 실패기로 기록되고야 만다.


22. 0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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