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의 역사

1일 1커밋 #17

by 김디트

제목을 다이어리의 역사,라고 지어놓고 보니 역시 플래너의 역사,라고 했어야 했을까 슬며시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다이어리와 플래너의 명확한 구분은 어떻게 되는 걸까. 예컨대 나의 경우엔 친구가 끄적이는 데 열중하는 나에게 '너 지금 뭐해?'라고 묻는 상황이라면 '다이어리 정리해',라고 하고, 어느 문서나 자기소개 란에 '자신의 장점' 같은 걸 채워야 하는 상황이라면 '플래너 작성', 이라고 한다. 그러니 지극히 사적이지도, 지극히 공적이지도 않은 이 글의 제목 같은 데서는 고민이 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 단어들을 대체 어떤 방식으로 구분해서 쓸까, 하는 마음에 인터넷을 둘러보니 명확한 기준이 없는 건 매한가지다. 그들도 자신만의 어떤 기준을 그어놓고 단어들을 선별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에 더해 '스케줄러, 저널'이라는 단어로까지 구분을 확장하고 있었고, 골치가 아파진 나는 그만 브라우저 탭의 닫기 버튼을 누르고 만다.


이번의 경우엔 일단 다이어리라는 단어로 퉁쳐야겠다, 하고 대충 정해버린다.


지금은 이렇게 명명법으로까지 고민을 안겨줄 정도로 나에게 꽤 중요한 심볼이지만 옛날에는, 그러니까 비현실적인 방학 생활 계획표를 매우 세세하고 꼼꼼하게 보란 듯이 세우곤 했던 그 시절에는 단지 유행하는 액세서리 정도의 위치일 뿐이었다.


한참 3공이니 6공이니 하는 다이어리들이 유행하고 있었다. 반짝이 풀, 잡다한 스티커들이 범람했고, 나도 간혹 없는 용돈을 쪼개서 그런 것들을 사곤 했다. 몇몇 개는 친구 생일 선물로 곱게 포장해서 주기도 했었고. 물론 이윽고 책상 서랍에 처박혀서 그런 게 있었던가 기억의 저편으로 파묻히곤 하긴 했지만. 아마 그 선물을 받은 친구 역시 그 다이어리를 비슷하게 취급했을 것이다. 그런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정립된 것들은 자라서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좀 더 자라고 난 후에도 난 어릴 때 정립한 그 다이어리에 대한 오해, 그러니까 다이어리 같은 건 꾸미는 손재주가 있고, 손글씨가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한 분야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손재주도 없고, 글씨도 그림에 가까운 사람이었으므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다이어리라는 건 내 인생의 밖으로 퇴출당했다.


갑작스럽게 하나 고백하자면, 나는 그다지 기억력이 뛰어나지도, 꼼꼼하지도 않은 사람이다. 중, 고등학교 때는 그런 기질이 너무 심해서, 엄마는 무슨 일을 시키고 나면 반드시 '절대 까먹지 마라!'하고 엄포를 놓곤 했다. 작은 이모 역시 나의 그런 건망증 혹은 무심함을 잘 파악하고 있었던 터라, 작은 수첩을 건네주며 이걸 가지고 다니면서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을 기록하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 수첩을 한 달 정도 품 안에 소중히 넣고 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소중히 '넣고만' 다닌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 수첩을 품에서 뽑아 책상 서랍 안에 집어넣고 말았다. 그 시절 내 건망증은 문제가 일으킨 결과마저 건망증으로 해결해버리는 나에겐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 주변 사람들만 속이 터져 나갔다.


하지만 그 건망증이 언제까지고 주변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진 않았다. 그러니까, 머리를 빡빡 깎고 얼룩무늬 복장을 하게 되면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단점들을 매일매일 지적해주는 사람들이 잔뜩 생기게 되므로, 모를 수도 무시할 수도 없게 된다.


그 시절, 유독 꼼꼼하고 업무를 잘하는 장교님이 있었다. 그는 세심한 손길로 '프랭클린 플래너'를 작성하곤 했는데, 그 모습이 유독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 고급스러운 커버 속에 전문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시간별로 관리 가능하게 꾸며진 속지 프레임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난 이게 부족한 거였구나. 물론 틀린 생각이었지만.


그 해 연말, 나는 휴가를 나오자마자 '프랭클린 플래너'를 사기 위해 쇼핑몰로 뛰어들어갔었다. 구매만 하면 바로 그 꼼꼼함, 업무 수행 능력 등을 얻을 수 있다, 하는 희망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그 희망은 가격표 앞에서 곧바로 와르르 무너졌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코너에서 튀어나와야 했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라고 생각하려는 찰나, 바로 옆에 형형색색으로 깔려 있는 다이어리의 가판대들을 보게 된다. 2010년에 대한 기대감만큼이나 많은 수의 다이어리들이 질서 정연하게 줄 서 있었다. 그 다이어리들은 외쳤다. '나를 골라!' 가성비에 유난히 약한 나는 그만 홀린 듯이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말았다.


그걸 시작으로 매년 구매하고 작성하고 실패하고 그래도 다시 구매하고 작성하고 하다 보니 어느새 10년을 쌓아 올렸다. 10년이라니, 감개무량하면서 왠지 조금은 기념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이번에는 가판대에 널리고 널린 스타일이 아니라, 좀 비싸더라도 유니크한 것으로 사야겠다 하는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프랭클린 플래너도 당연히 그 보상심리의 사정권 내에 있었다. 하지만 그 빡빡한 프레임은 내가 쌓은 다이어리 노하우와는 결이 너무도 달라진 탓에 제외. 꼼꼼히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찾아낸 '미도리 트래블러스'는 꼭 내 마음에 드는 형태였다. 조금 비쌌다. 하지만 이제 난 까까머리 풋내기 군인이 아니었다. 용감히 결제한다. 무이자 6개월이었지만.


어느 날 애인은 그날도 열심히 다이어리에 할 일을 체크하고 있던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이어리 왜 써?"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만약 이렇게 다이어리라도 안 썼으면 기억력이 안 좋아서 아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까먹었을걸. 나만 기억하는 순간들은 내가 잊어버리면 영영 사라지는 거잖아."


아마 다이어리마저도 놓쳤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먹먹해서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오늘도 잘 적어둘게."


"그렇구나."


애인은 고개를 끄덕였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애인 역시 간혹 기분이 내키는 날이면 내 다이어리에 그 날의 일을 간략하게나마 쓰게 되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내 지난 10년은 다이소에서 산 작은 종이 상자 안에 남는 공간 없이 가득 들어차 있다. 10년, 이래 봤자, 이 정도 크기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고, 너무 하찮은 느낌이 들어 괜히 2010년도 다이어리를 꺼내본다. 형형색색, 아주 난리구나. 원래 처음은 난리법석을 좀 떨어줘야 기분이 나는 법이지. 그 시절의 어린 나를 대견한 눈빛으로 읽어나간다.


22.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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