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때쯤엔 경보 같은 게 유행이었고, 아파트 앞으로 난 가느다란 산책길을 수많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빠르게 걷곤 했는데, 엄마도 어느새 그 대열에 합류했었다. 주말 저녁이면 간간히 나에게도 같이 가자고 권유하곤 했었다. 엄마가 언제 경보를 그만뒀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로도 제법 오랫동안 지속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쯤에는 근처에 시립 수영장이 생긴다는 소식에 수영을 배우러 다녀야겠다, 하고 결심하더니, 매일같이 수영장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엄마는 수영장에 좀 더 빠르게 가기 위해서 운용할 수 있는 모든 운송수단의 운전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더니, 이내 자동차 면허와 운전 실력까지 갖추고 만다. 정말 대단한 의지력이다.
옛날엔 본업도 있으면서 매일같이 아침마다 수영장을 나서는 엄마의 부지런함에 혀를 내둘렀었지만, 운동에 제대로 습관이 들어본 나는 이제 이해한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되려 피곤해진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 혹은 아직 몸이 새것이나 다름없는 10대들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엄마는 부지런히도 수영장을 다녔다. 엄마는 친화력이 좋은 사람인지라, 수영장에서 언니니, 동생이니, 많이도 사귀었다. 그렇게 엄마의 친목 그룹이 또 하나 생겼다.
"엄마, 어디세요?"
"응 수영장 애들이랑 밥 먹으러 왔다."
빈번히도 그렇게 대답했다.
하지만 벌써 근 일 년간, 내가 헬스장을 나가지 못한 기간만큼, 엄마도 수영장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이렇게까지 오래갈 줄 몰랐던 나, 그리고 엄마는 서로 간 초조함을 공유했다. 나는 홈 트레이닝을 하는 것으로, 엄마는 요가를 배우는 것으로 일단 결론을 내렸지만, 코로나가 더 심해진 요새는 요가 수업도 문을 닫아 버렸다. 엄마는 코로나 블루가 반쯤 좀먹은 모습이었고, 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얼른 수영장이든 요가 수업이든 문을 열 수 있는 상황이 와야 할 텐데, 하게 된다.
굳이 밝히자면 나도 수영을 못하는 편은 아니다. 그야, 어릴 때부터 어린이 수영 강습을 받기 위해 작은 셔틀버스를 타고 왕복하곤 했었는 데다가, 핏줄이 핏줄이니까.
엄마는 울릉도 출신으로, 바다에 놀러라도 갈라 치면, 엄마는 칼과 양동이를 들고 신나게 바다로 뛰어들어 이런저런 해산물을 채집해오곤 했다. 마치 개구리처럼 유연하게 헤엄치는 엄마의 모습은 왠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대범하고, 그러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런 엄마를 울퉁불퉁 바위를 조심조심 딛으며 따라간 나는 따개비며 거북손이며 잔뜩 뜯으면서도 엄마가 저 개구리헤엄으로 수평선 너머까지 가버리진 않을까 걱정되어 흘끗 흘끗 훔쳐보곤 했다.
엄마가 날 수영장에 보낸 이유가 아마 그런 핏줄의 문제 때문은 아닐 것이다. 엄마는 나에게 최대한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고 고백했었는데, 그 교육관의 일환이었을 것이고, 아마 누구네는 수영장을 간다느니 하는 입과 입 사이를 떠도는 소문들에도 솔깃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동생과 나는 수영가방을 짊어지고 여름 방학 내내 수영장을 향하는 셔틀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다. 셔틀버스에서는 늘 미묘하게 염소 냄새가 났다.
동생과 함께 수영장에 처음 갔을 때였다. 나는 동생을 잘 돌봐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인지, 새로운 환경 때문인지, 아마 둘 모두의 이유로 굉장히 굳어 있었다. 동생은 어렸기 때문에 물에 뜨는 법부터 배워야 했고, 나는 그 이전에도 잠깐 배웠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먼저 수영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손발이 파르르 떨렸다. '전에 배운 적 있으니까'라는 말이 마치 '수영 국가 대표를 한 적이 있으니까' 정도의 무게감이 되어서 어깨 근육을 잔뜩 경직시켰다. 수영 강사 선생님은 자, 어디 편한 수영법으로 한번 수영해보자, 했고, 나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정신으로 자유형을 시작했다. 나의 몸동작 하나하나가 어땠는지, 숨은 어떻게 쉬는지, 그런 걸 판단할 정신이 없었다. 나는 그냥 몸이 시키는 대로 허우적거렸고, 허우적거렸고, 허우적거렸다. 그리고 나는 자유형을 배우는 반에 배속받았다.
수업을 마치고 난 후의 동생은 늘 울상이었다. 몸이 좀처럼 뜨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얼굴을 물속에 집어넣는 것도 도저히 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너무 무섭다고. 대체 얼굴을 물속에 파묻고 지속적으로 발을 움직이는 걸 사람이 할 수 있는 거냐고, 잔뜩 공포에 질린 표정을 지었고, 나는 웃었다. 동생이 한번 해보겠다며 벽을 쥔 채로 발로 물장구를 치며 물속에 고개를 박았는데, 본인이 딱 얼굴이라고 인지하는 부분, 즉 눈, 코, 입 정도만 물속에 넣고, 조그만 귀나 수영모로 감싸여 있는 동그란 뒤통수 같은 건 전혀 넣질 못했다. 그래서 나는 또 한 번 웃고 말았다. 그때는 물속에 귀를 넣으면 웅웅, 새로운 세계가 있는데 그게 왜 그토록 힘들고 싫을까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바로 그게 싫었던 거다. 나는 이내 고개를 든 동생에게 '귀까지 푹 넣어야지'하고 충고했다. 동생은 알겠다고 하더니, 또 얼굴만 물속에 처박았다.
자유 수영 시간까지 모두 마치고, 몸을 헹구듯이 씻고 수영장 밖으로 나가면 기분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여름의 온도가 젖은 내 머리카락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늘 동생과 수영장 안에 마련된 매점에서 꼬깔콘을 사 먹곤 했다. 군옥수수맛 꼬깔콘을 주로 사 먹었다. 운동 후에 먹는 게 맛이 없을 리 없겠지만, 그때는 그걸 몰랐다. 그냥 수영장 꼬깔콘은 맛있구나, 하고 생각했고, 그래서 이따금 워터 파크라도 갈라 치면 왠지 그렇게 꼬깔콘이 먹고 싶어 진다. 그렇게 꼬깔콘과 수영가방과 동생과 셔틀버스는 부르릉, 집을 향했다.
만약 수영장엘 다시 가게 된다면, 꼬깔콘을 꼭 사 먹어야지. 군옥수수 맛으로. 수영장을 생각하면 왠지 그렇게 다짐하게 된다.
하지만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엄마도 수영장은커녕 요가 수업도 못 가고 있다. 맛있는 꼬깔콘을 가까운 시일 내에 먹기는 요원해 보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