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방학을 맞이한 애인은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애인의 고향은 부산. KTX를 타면 2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실제 거리를 고려하면 왠지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싶어 진다. 아무튼 거리로 치면 길기 때문에 애인은 자기 몸보다 커다란 캐리어를 챙겨 왔고, 다행히, 랄까 거리 두기 덕분에 옆 자리에 사람이 앉을 일이 없었기에 가방을 짐칸에 올리지 않아도 되어 부산에 도착했을 때 짐을 어떻게 내릴 것이냐 하는 둥의 걱정거리 하나는 지울 수 있었다.
애인이 KTX를 타고 떠나가는 걸 가만히 지켜봤다. 기차는 천천히 가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는데, 처음의 속도는 정말 보잘것없어서 이 정도 속도로 부산까지 갈 수나 있을까 싶었다. 만약 내가 열차 문의 손잡이에 매달린다면 기차는 다시 멈춰 설까, 아니면 내가 매달린 것도 모른 채 마구 내달릴까, 그런 덧없는 상상을 하면서 기차가 채 플랫폼을 떠나기 전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차가 사라진 플랫폼은 왠지 쓸쓸한데, 사람들이 모두 몸을 싣고 떠나고 나면 나처럼 배웅을 하던 사람 몇몇과 허전함만 남게 될 게 뻔하고, 그게 왠지 싫었기 때문이다.
나는 웬만하면 시간 대비 저렴한 버스를 이용하곤 하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기차를 이용한 게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다. 가장 옛날의 기억을 짚으라면 쉽게 짚어낼 수 있는데. 어린 시절, 유치원도 가기 전의 어린 시절이다.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깐 거처를 옮기신 울산에 가는 걸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할머니의 품에 안겨서 무궁화호를 빈번히 탔었다. 그 어린 시절에도 왠지 겸양을 떠는 기질이 있었는지, 아니면 할머니가 절대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던 건지, 기차 복도를 통과하는 이동식 매점에 매달려 있는 맥반석 오징어 따위가 정말 먹고 싶었지만 침만 꼴깍 삼키고 참았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아무튼 무궁화 호를 타고 내리는 그 순간이 늘어진 비디오테이프처럼 노이즈가 잔뜩 낀 채, 그리고 슬로 모션의 형체로 남아있는 걸 보면 어린 시절의 시간은 지금에 비해 정말 정말 느리게 흘러갔던 것이 분명하다. 분명 한두 시간 정도였을 것이 분명한데, 아직까지 남은 그 뉘앙스는 세계일주라도 마쳤던 느낌이니.
벌써 일 년쯤 전에는 엄마가 기차를 타고 서울 우리 집에 온 적이 있다. 엄마는 어묵을 메인으로 하는 술집을 경영하고 있는데, 개인 사업이 되면 노동자의 업무 강도는 노동법에 걸맞지 않게 치솟게 마련이다. 경영자이자 노동자인 엄마는 본인의 정체성을 경영자에 조금 더 많이 할애했고, 그래서 서울에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랬기에 엄마가 서울에 올라온다는 소식은 나에겐 굉장히 반가운 일이었다. 서울역 코앞에서 살기 때문에 버스만 타도 금방 집과 역 사이를 왕복할 수 있지만, 그런 엄마의 편의를 최대한 봐주고 싶은 마음에 서울역으로 차까지 몰고 가서 엄마가 도착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었다. '나가는 곳'에서 엄마가 도착하길 기다리면서 앞쪽, 뒤쪽 에스컬레이터에 끊임없이 시선을 나눠 할애하며 엄마를 기다렸다.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는 연락을 괜히 했다간 엄마가 부담감이라도 가질 것 같았기 때문에, 그리고 조금은 서프라이즈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칸에서 내리는지 굳이 연락하여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탄 게 분명한 기차가 도착했고, 사람들이 거품처럼 빠져나와 일사분란히 에스컬레이터 앞으로 모여들었다. 엄마도 그 거품의 일부분이었다. 내가 가만히 엄마를 지켜보고 있자, 이내 엄마는 나를 발견했고 환하게 웃었다. 난 그 웃음이 좋았다.
돌아가는 날이 되자, 엄마는 초조하게 얼른 역으로 가자고 했다. 엄마는 준비성이 철저하기 때문에 올라오면서부터 내려갈 차편을 이미 예약한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잔뜩 여유를 부렸다. 그야 그럴 것이, 서울역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왠지 엄마가 경주로 다시 내려간다는 사실이 싫었다. 경주로 돌아가면 엄마는 또 가스레인지에 묻은 찌든 때 같은 일상 속으로 돌아가야 할 터였다. 거기에는 즐거움보단 고통이 많아 보였다. 엄마의 삶은, 나로서는 상상으로도 견뎌낼 수 없는 것이었고, 그래서 더 진득이 엄마를 끌어당겼다. 1분이라도, 1초라도 더 있다가 가라고. 엄마는 나와 동생에겐 유독 약했기 때문에 불안해하면서도 나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서울역에 있는 아웃렛을 구경하면서 엄마와 수다를 떨었다.
예상했다시피, 몇 분 차이로 엄마는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패인은 엄마가 탈 플랫폼을 제대로 알아두지 않은 탓. 잘못된 플랫폼에서 엄마가 타야 할 열차가 천천히 움직이는 걸 목격했을 때의 그 기분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다. 엄마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해서, 나는 얼른 먼저 달려 나가서 매표소에서 기차표를 환불하고 가장 빠른 다음 열차를 예매했다. 직원은 가장 빠른 열차는 입석밖에 없다고 했다. 엄마는 입석으로라도 빨리 가야지 가게 문을 열 수 있다고 했고, 나는 찢어지는 마음으로 입석 열차를 예매했다.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엄마와 카페, 식당 등을 전전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래도 조금 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엄마의 초조한 눈빛을 보자 좋았던 마음은 죄책감으로 변질되었고, 나는 엔제리너스 아메리카노 컵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늘 한 번 실수를 하고 나면 다음번에는 더욱 철두철미하게 마련이다. 엄마와 나는 열차가 오기 전부터 플랫폼에 가서 기다렸고, 이번에는 실수 없이 탑승할 수 있었다. 엄마가 떠나는 열차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는 그만 열차가 모습을 감추는 것까지 바라보고 말았다. 엄마가 쓸쓸히, 다리 아픔을 참아내며 화장실 칸 앞에 서서 창 밖을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하니, 더욱 허전하고 쓸쓸했다. 배웅하던 사람들도 모두 떠난 플랫폼. 나는 스산한 바람을 맞으면서 홀로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