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싶은데 왜 사고 싶은 거지?

1일 1커밋 #23

by 김디트

요새는 틈만 나면 부동산 실거래가를 구경한다. 이상한 일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부동산 같은 건 엄청나게 큰 어른들만 하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엄청나게 큰 어른이다. 34살이다. 예컨대 내 인생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통째로 들어낸다고 해도 31살. 그래도 삼십 대. 그 무시무시함에 왠지 기가 죽는다. 그렇게 기가 죽은 큰 어른인 채로 아파트가 얼마에 팔렸니, 무슨 청약이 언제 시작했니, 구경한다. 아마 다른 큰 어른들도 처음에는 이렇게 잔뜩 기가 죽은 채로 구경했겠지, 싶어도, 기는 전혀 살아날 기색조차 보이지 않는다.


앞서 틈만 나면 부동산 구경을 한댔는데, 그 와중에도 틈이 난다. 틈 사이에 또 다른 틈이 있다는 게 이상하지만, 실제로 그렇다. 그 틈 사이의 틈. 나는 혹여 그 사이에 핫딜이 뜬 게 없나, 게시판들을 두루두루 훑어본다. 그러다 보면 몇 분 전에는 전혀 사야 겠다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것들이 우르르 머릿속으로 몰려와서 농성을 시작한다. 나를 골라달라, 나를 사달라! 머리가 아파지면서, 뭘 사야 하지,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며칠 후에 택배를 받으면서, 아, 안 산다는 선택지도 있었구나, 조금 후회를 하면서, 하지만 설레는 마음과 손은 택배의 테이프를 주우욱 당기면서, 그런 복잡한 심정이 된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문화 상품권을 할인한다는 소식에, 이 참에 하나 사볼까? 하는 심정이 되었는데, 곧 이어서 이걸 사면 뭘 해야 할까를 고민했고, 그러다 보니 요새 홈 트레이닝을 하면서 덤벨 무게가 좀 부족한 것 같은데 덤벨이나 사볼까?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문화 상품권 할인이라는 정보를 보지 않았다면 하지 않았을 연쇄적인 생각들이 나 좀 잡아보라며 나를 추월해서 마구 달려갔고, 나는 달려가는 주인을 쫒는 강아지처럼 미친 듯이 그를 쫒았다. 한참 그 술래잡기를 하다가 그만 지쳐서 잠깐, 타임, 하며 숨을 고르고 보니 내가 뭘 하는 짓이지, 싶어서 이내 결국 구매 창을 닫았지만, 덤벨에 대한 욕구만은 잘못 말린 빨래 냄새처럼 눅눅히 남아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뭔가를 사거나, 뭔가를 사고 싶어 하거나 둘 중의 한 가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되짚어봐도 명확한 경계선은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다는 것 정도만 명확하다. 어릴 때는 아마 내가 가진 쇼핑의 카탈로그의 분량이 너무 적었기 때문일까. 이를테면 옛날 문방구에서 걸어놓고 팔던 만득이 시리즈 정도의 크기 일려나. 하지만 나이를 먹는 만큼 카탈로그는 지평을 넓혀갔다. 놀랍도록 몸집을 불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카탈로그는 어느새 드래곤볼 출판 권수만큼이나 늘어나 있다. 판본마저도 다양하다. 나는 드래곤볼의 새 판본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는 드래곤볼 만화책 수집가의 마음으로, 오늘도 부동산 실거래가를 뒤적였다.


바로바로 구매하거나 팔아버리거나 하는 결단력이라도 있었다면 시간이라도 아꼈을 것을. 오늘 쇼핑 목록을 주르륵 읽어내리다가, 문득 북카페를 갔을 때가 떠올랐다. 난 북카페에서 초조하게 시계를 바라보며, 이 한정된 시간을 최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선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한참을 고심하곤 했는데, 그러다가 그만 대부분의 시간을 날려버린 게 부지기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 쇼핑 카탈로그가 늘어가는 건 즐겁다. 살 수 있는 목록이 많아져서 즐겁다는 뜻이 아니라, 불가해하던 타인의 마음들을 알아간다는 점이 즐겁다. 어린 시절, 모든 음악이 MP3 플레이어로 귀결되던 때에는 음반을 모으는 걸 이해하지 못했고, 모든 옷이 엄마 아빠의 의도에 필터링되던 때엔 옷과 신발에 그 큰돈을 쓰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얼마 전까지는 집이 얼마가 올랐니, 하는 것들이 너무 속물처럼 느껴지곤 했는데, 막상 부동산 욕구를 배우고 보니 그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마치 이젠 음반을, 옷을 알고 싶은 만큼, 부동산도 알고 싶다. 미치도록 알고 싶다. 역시 배움은 욕구에서 비롯되는 모양이다.


이렇게 보면 역지사지란 정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을 나의 경험을 기반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국어로 수학을 이해해 보라는 말과 같다. 과거의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내가 음반을 사고, 옷을 사고, 심지어 덤벨을 사고 싶어 하는 걸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서투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고, 그래서 조금 겸허해졌다.


그건 그렇고, 나는 대체 왜 늘 무언가를 사고 싶어 하는 걸까? 왜 지금 당장 손에 넣고 싶어 할까? 나중에 가져도 되잖아? 나는 덤벨을 정확도 순으로 쭉 정렬해둔 채, 가만히 팔짱을 꼈다. 지금 사야 하나? 한참을 고민해 보았지만, 난 나 자신에게조차 역지사지를 실패하고 만다. 그래서 또 조금 겸허해졌다. 하지만 겸허함과 구매욕의 역학관계를 도저히 찾지 못한 나는 초조하게 신용카드와 쇼핑 목록을 번갈아 바라봐야 했다.


22.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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