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게임하고 싶나요

1일 1커밋 #24

by 김디트

오늘도 같은 하루를 보낸다. 회사 업무를 하고, 커피를 내려 마시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음악을 듣는 이 일련의 사이클은 마치 정교한 손목시계처럼 정확히 맞물려 굴러간다. 그런 하루를 보내고 나면 왠지 뿌듯하기도 하거니와, 하루의 모든 부분이 명확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나의 예상 아래에 두는 게 가능하다. 스트레스, 사실상 내가 계획을 세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좀 더 완벽한 하루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를 하고 개운한 몸으로 책상에 앉아서 플래너를 펼친다. 그리고 꼼꼼한 눈길로 하나하나 불명확한 스트레스를 제거해 나가 본다. 오늘도 아침에 책을 조금 읽고 회사 일을 시작하면 되겠군.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선별적으로 오늘 할 일들을 채워 넣다 보면, 매번 한 일정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다. 그건 바로 게임. 그중에서도 '게임하기'. 게임, 이 애증 하는 스트레스 생성기 녀석. 나는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오늘 일정에 넣을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게임은 사실상 스트레스로 재미를 만들어낸다. 그런 불명확한 스트레스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일정에 포함시킬 수는 없는 일이었.


'게임 개발자'가 게임을 안 하는 건 본분을 망각한 처사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이런 고민은 괴롭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눈을 꼭 감고 '게임하기'라는 일정을 플래너에서 쏙 빼내어 서랍 깊숙이 집어넣어 버린다. 꼭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들었을 때 잽싸게 화제를 돌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서랍 문을 꽁 닫은 채로 꽤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같이 '게임 개발'에 적을 둔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나 오래간만에 할로우 나이트 다시 해볼까 하고."


그 말은 애써 망각하고 있던 본분을 심각하게 자극했다.


아마 스테이터스 창 같은 게 있어서 능력치를 직접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이 친구의 '스트레스 조절' 능력치는 정말 높게 책정되어 있을 것이다. 친구는 시간이 생긴다면 게임을 한다. 게임을 정말 사랑한다고,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일상으로 표현한다. 그렇다고 본인의 나머지 일상이 망가지는 것도 아니다. 완벽히 스트레스를 체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증거로, 친구가 언급한 게임, 할로우 나이트는 어렵기로 소문난 게임 중의 하나이다. 왠지 나는 괜히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며칠 전, 나도 할로우 나이트를 시작했다. 서랍에서 게임하기 일정을 끄집어내 플래너에 새겨 넣고, '시작하기' 메뉴를 선택했다. 화면이 암전 되고 곧이어 로딩 화면이 떠올랐다. 두근두근, 늘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면 이 로딩 화면 뒤에 어떤 게 날 기다리고 있을까 두려움 반 기대 반의 마음이 된다.


그 후로 두 시간 정도 플레이를 했다. 게임을 종료하고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잔뜩 긴장된 손목을 풀면서 간단히 스트레칭을 했다. 겨우 이 정도의 불명확한 스트레스로는 나의 일상에 무리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로 살짝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혔다. 무겁고 진지한 메시지가 가득해 보여서 왠지 재생 버튼을 누를까 말까 고민되던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났을 때 느끼는 딱 그 느낌이었다. 모든 걸 해석할 수 있다는 나의 자만심이 어떻게 보면 가장 불명확한 스트레스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했다.


래서, 이번 주는 계속 게임을 하고 있다.


아니, 게임이 하고 싶다.


주말에는 열심히 게임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금요일 밤을 보낸다.


21. 0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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