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은 어디서 파나요?

1일 1커밋 #20

by 김디트

간혹 이런 궁금증이 들곤 하는데, 주로 마음이 아프고 힘이 들 때, 일상의 층계 하나하나를 걸을 때마다 아픔이 떠오를 때, 유독 그렇다.


마음이 강철처럼 단단한 사람들은 대체 어떤 메커니즘으로 그런 경지를 이뤄낼 수 있었을까.


마치 해일처럼 철썩이는, 세상에 가득 차 있는 이 부정적인 것들을 대체 어떤 비법으로 견디는 것일까. 간혹 그들은 그런 걸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타인이 내뱉는 모든 언어와 행동과 뉘앙스에 귀를 쫑긋 세우고 듣기 바쁜 나는 그럴 때마다 질투심이 바짝 들고 만다. 만약 내가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하지만 아무리 상상하려 해 봐도, 나의 미흡한 상상력은 그런 나를 토막만큼도 상상해내지 못한다.


망망대해 바다에 조각배 하나 타고 너울너울 가던 나. 해일이라도 한번 지나갈라 치면, 마치 손바닥이라도 뒤집듯이 손쉽게 배는 뒤집어진다. 해일은 비웃듯이 나를 스쳐 지나가지만, 나는 그 비웃음마저 무서워, 꼬르륵 바닷속에 잠겨 있다. 꼬르르륵. 꼬르르르르륵. 가라앉은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바다 위를 가만히 바라본다. 서서히 가라앉는 내 배. 지나가는 해일. 그리고 그 위를 힘차게, 정말 힘차게 가르는 누군가. 뜨거운 햇살 아래, 돌고래처럼 매끈한 몸, 그리고 반짝이는 해일. 나는 정신이 아득하기만 한데, 그 돌고래들은 거침없이 해일 위를 가른다. 뒤집어지면? 발목에 달린 줄을 잽싸게 잡아당겨, 서핑 보드 위로 빠르게 올라간다. 나는 그 매끄러운 움직임에 감탄을 금치 못한다.


어쨌거나 배는 뒤집어진 상황. 나는 잠긴 깊이만큼 깊은 고민에 빠진다. 여기서 얼른 빠져나가야 하는데, 하다가도 아니 잠깐. 얼른 빠져나가야 하는 게 맞긴 한가? 모르겠네. 마치 적당한 온도의 욕탕에 가만히 앉아있는 기분이다. 몸이 노곤 노곤하고, 머리도 몽롱해서, 복잡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은 그런 기분. 배가 뒤집어져서 가만히, 천천히, 침잠하고 있는데도 그걸 가만히 보고만 있게 되는 것이다. 배를 뒤집으면, 또 노를 저어야겠지. 이 기분으로, 이 추잡하고 더럽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기분으로, 또 그 망망대해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그래야 하겠지만, 그럴 수 있을까? 꼬르르륵. 결국 나는 몸을 뒤집어 바다의 깊은 심해로 시선을 돌린다.


외면이 많은 문제들을 끊임없이 키워왔음을 알면서도 그런다. 잊어버리려고 노력하다가 정말 잊어버렸던 탓에, 나의 수많은 문제들은 내 그림자 아래에 숨어서 몸집을 불린다. 이번 문제도 또 그렇게 몸집을 불려 나가다가, 내가 잊었을 때쯤, 쓰나미 같은 해일을 몰고 오겠지. 하지만 역시 지금 생각하기엔 너무 중대한 문제다. 나는 뜨끈한 바닷속에서 그냥 사우나나 계속하고 싶어 진다. 지금도 누군가들은 해일 위를 가르고 있겠지, 하다가도 이내 고개를 도리 도리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꾸욱 눈을 감고 있다. 오늘이 되어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얻어맞은 부위는 여전히 아팠고, 팔다리는 저렸다. 하지만, 평일이었다. 침대 위에서 꾸물거리다가, 아픈 머리를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서 타이레놀을 하나 까서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드리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모든 건 그 자리에 있었는데, 나만, 나의 마음만, 나의 자존감과 상처 받은 영혼만 흥건하게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걸레라도 들고 와서 훔쳐야 할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도저히 들지 않았다.


"자존감 좀 팔아라."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이렇게 적었다가 이내 모조리 지워버리고 말았다.


뒷목이 아파, 고개를 45도가량 들었더니, 천장에서는 반파된 내 배가 아직까지도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고, 나는 구토감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22.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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