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등지고 담을 넘던 날

1일 1커밋 #27

by 김디트

깊은 밤이었다.


아니, 실은 깊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을 넘어서는 아이에게는 어떤 밤이든 깊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아무튼 지금 나이가 되어서는 11시가 넘어가는 시간에는 깨어있으면 안 된다고 매일같이 신신당부받던 나이에 체감하던 시간 개념이란 건 당최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달이 밝았던 것은 기억이 난다. 주황색 가로등들이 일제히 줄을 서 있었던 것도 뚜렷하게 그려진다. 어두운 밤거리. 초등학교 5학년의 짧은 세월 중에서도 반절 이상을 보낸 그 거리들은 아직까지도 정확하고 확고하게 눈과 눈꺼풀 사이에 그려낼 수 있다.


컴퓨터 학원을 마치고 나오는 길이었다. 너저분한 건물의 좁은 계단들을 내 오래된 친구와 함께 우당탕거리며 내려왔다. 건물의 뒷문을 통해 나오면 미끄럼 방지용으로 빗살 무늬가 새겨져 있는 붉은색 투박하고 거친 철제 계단이 있었는데, 위생 개념이 없다시피 했기에 몇 계단을 한 번에 뛰어내리기 위해 그 너저분한 철제 계단의 손잡이를 서슴없이 쥐곤 했다. 철제 계단은 그 옛날에도 이미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서 붉은색 껍질이 여기저기 벗겨져서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거기서 묻어나는 비릿한 쇠 냄새가 왠지 아직까지 잊히질 않는다.


오래된 친구와 나는 워드프로세서니 하는 컴퓨터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따분한 수업을 감내해야 했기 때문에 열대야 때문에 눅눅하고 후끈한 공기마저도 시원하게 들이마실 수 있었다. 철제 계단을 한달음에 뛰어내린 나와 친구는 그 시절에도 이미 시대의 뒤안길로 들어서버린 듯한, 동네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빵집 하나를 제외하곤 불이 깜깜하게 꺼져 있는, 깊이 잠든 건물 상가 거리를 시끌벅적 축제 분위기로 바꾸며 집으로 향했다. 아마 장난을 치거나, 수업 때 나누던 한담을 이어서 하거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셋 중 하나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좁은 세계에 사는 만큼 폭 좁은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진지함까지 격하시키고 싶진 않다. 그 진지함이 없었더라면 내가 지금 이 시간과 공간을 통과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오래된 영화를 다시 되감기 하는 기분으로 그 진지함도 돌려보고 싶어 질 수밖에.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원래라면 친구는 집으로, 나는 엄마가 운영하는 아동복 가게로 곧바로 돌아가야 했을 터다. 하지만 어린 우린 순순히 잠자코 일정을 소화해 주지 않았다. 아직 체계에 순응하는 법을 완벽히 체화하긴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리고 그 시절에는 핸드폰이고 뭐고, 우리를 옥죄는 것이 없었으니 더욱 거칠 게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일탈할 용기도 돈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하릴없이 친구의 집과 엄마의 가게 사이에 있는 주차장을 배회할 뿐이었다. 그 시절 밤은 무지막지하게, 마치 우리 앞에 놓여있을 인생처럼이나 길었다. 우리는 주차장을 서성거리면서 그 길고 긴 시간을 조용하고 묵묵하고 부드럽고 진지하게 통과했다.


길거리 떡볶이 가판대의 아주머니가 하루를 마무리하느라 분주했지만 우리는 한낮처럼 떠들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주로 게임이었다. 우리가 즐겨하던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엿가락처럼 길게 길게 늘여서 동어반복적으로 떠들었다. 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했을 게 분명한데 그게 그렇게나 재미가 있었다. 실버 나이트에서 클래스 체인지를 하면 나이트 마스터가 된다느니 하는, 지금은 인터넷에 단어 몇 개를 적으면 바로 나올 정보를 마치 귀중한 시험 족보라도 나누듯 속삭였다. 아직 인터넷이 태동하지 않았고, PC 통신 따위가 유행하던 시절이었으니, 게임 공략 정보의 창구도 그리 넓지 않았다. 게임 잡지 정도가 마지노선이었을까. 그러니 그런 자투리 정보도 귀중하고 즐거울 수밖에. 그렇게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떡볶이 아주머니, 행인, 자동차 같은 것들이 하나 둘 배경에서 사라져 갔고, 밤은 더 밤의 구색을 갖춰나가곤 했다.


좁은 세계에서는 같은 미래를 보기가 한결 수월했다. 우리는 게임을 만들 거야, 서로의 상상을 나누어 먹으면서 의기투합했다. 제법 진지한 투로 게임을 구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구상보다는 모방에 가까운 것이었다. 창작은 원래 모방에서 시작한다고 했던가. 나의 창작 역시 그 깊고 어두운 밤, 달빛 하나 바라보며 쌓아가던 모방에서 잉태한 셈이다.


그런 긴 토론 끝엔 늘 친구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하곤 했다. 시계도 없었을 테니 아마 감으로 벌써 9시가 넘은 것 같다는 둥의 말로 오늘의 토론은 여기까지로 하자고 선언했었다. 끝맺음이 아쉬운 쪽은 늘 나였기에 입맛을 다시며 애처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었다. 하지만 친구는 시간이 늦었다며 제법 강경하게 대응하곤 했다.


이따금 친구는 아파트 단지 입구가 아니라 단지 뒤쪽 담을 넘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아쉬운 마음에 나도 따라 담을 넘곤 했었다. 비록 나뭇가지에 온통 긁히고 흙이 묻어 바지가 엉망이 되었었지만, 왠지 그 거친 하루의 마무리가 즐겁고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는 그게 그렇게 즐겁진 않았던 모양이지만. 그 달 밝은 밤, 한참 게임 이야기를 나누다가 친구와 함께 달빛을 등지고 담을 타 넘는 그 장면은 아직까지도 이상하게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


그 후 고등학교 2학년쯤이었던가. 친구는 그렇게 선언했다. 게임은 평범하지 않다는 걸까? 아무튼 평범하다는 건 안정적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는 모양이니 틀린 말은 아닌 듯싶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지금에 와서도 모난 곳 없는 풍족한 삶을 살고 있으니 친구는 자신의 선언을 잘 지켜내고 있는 셈이다. 그런 면에선 참 존경스러운 친구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은 본인의 아파트로 쏙 들어간 친구의 뒷모습이 못내 아쉬워서 달빛 아래서 서성이던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따금 그 시절이 앨범 속 사진 한 장면처럼 떠오르는 이유는 그 기억이 나의 본질의 한 축을 맡고 있기 때문이겠지. 왠지 모르겠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을 다시 떠올리고 있자니 마음 한편이 씁쓸했다.


21. 0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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