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고 싶어요

1일 1커밋 #26

by 김디트

애인과 나누어온 시간이 그리 짧지만은 않은 덕에 난 자주 애인과의 미래를 상상하고 그걸 토대로 이야기를 꺼내보는 편이다. 그렇다곤 해도 사실상 나 혼자 상상한 단방향적인 미래로, 만약 같이 살게 된다면 방은 어떻게 나누자, 내 방은 어떻고 네 방은 어떻고, 청소 분담은 어떻게 할 것이며, 집 위치는 어떻게 하자, 하는 식의 사실은 지극히 자본집약적인 사담 격의 망상이다. 하지만 애인은 늘 가차 없다. 눈을 가늘게 뜨면서 객관적이고 담담하게 문제점들을 짚어낸다.


"넌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안돼."


제법 단호하게, 마치 결격 사유를 통보하는 윗사람처럼 말한다. 그러면 나는 짐짓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어진다. 나눈 시간만큼 깊게 나의 본질을 꿰고 있는 애인의 말을 맞받아치기는 쉽지 않다. 생떼 비슷한 것으로 반항을 해보지만, 애인의 외면에 이내 망상은 거품처럼 사그라들고 마는 것이다.


나의 성향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그릇으로 비유한다면 적어도 찌개 냄비 같은 건 절대로 아닐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국그릇에 가까울 것이다. 단적인 예로 나의 취미는 전반적으로 타인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 오롯이 혼자 즐기는 것들이다. 독서부터 시작해서 게임, 개발, 운동. 물론 누군가는 이 취미들을 '개인적'이라 해석한 것에 반기를 들고일어날지도 모르겠다. 독서 모임을 하는 사람, 코옵(협동) 게임을 즐기는 사람, 팀 개발을 하는 사람, 크로스핏, 구기 종목 등을 즐기는 사람들은 크게 분개하겠지. 독서니 게임이니 하는 단어 몇 개에도 이토록 의견이 분분하다. 아마 그들도 자기소개서 취미 란에는 나와 같은 걸 적겠지 하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진다. 하물며 그런 단어들을 엮어서 나의 그릇을 표현하자니 얼마나 많은 왜곡이 있을까. '개인적인 국그릇' 같은 표현은 나를 담기엔 택도 없는 것이겠지.


아마 본인을 개인적이라 하는 사람들이 드는 이유도 제각각일 것이다. 앞서의 취미처럼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경우도 극히 미미할 것이다. 굉장히 미묘한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도 나의 개인적인 성향의 핵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에는 어려움을 겪는다. 애인의 객관적인 눈이 나의 망상 속 모순을 더 잘 짚어내는 것만 봐도 확실히 그렇다. 아마 타인들과의 교류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레짐작할 뿐이다.


마치 물과 물이 섞이듯 자연스럽게 한 무리 안으로 쉽게 진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너무나 쉽게 타인들의 적정선 근처까지 접근해서 무리 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마치 국경선을 사이에 둔 이산가족이라도 되는 것처럼 절절하다. 난 냉철하기 그지없지만, 그들의 절절함에 왠지 호응을 해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오랜만이네요, 언젠가 밥 한 끼 하죠'로 정확하게 축약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눌 뿐이지만, 그걸 마치 크리스마스 트리라도 장식하는 느낌으로 길게 늘여야 하는 나는 늘 곤혹스러울 뿐이다. 그렇게 길고 속내용은 부실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를 마치고 나면 언제나 진이 빠진다. 얼굴에 경련이라도 일 것 같다.


아마 약간 병적으로 조화를 추구하는 나의 성향 탓일 것이다. 나는 늘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어떤 반응으로 대응할지를 전략적으로 고민한다. 상대방이 싫어하는 면이 노출되진 않았을까 늘 보수하고 경계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은 상대방과의 친밀도를 일정 이상으로 유지하여야 하는 게임처럼 변질된다. 타협이 절대 되지 않는 의견이 아닌 한 고개를 끄덕여준다. 재미없는 유머에도 깔깔 큰 리액션을 취한다. 그렇게 잘 대응하면, 그래서 모든 것들이 잘 맞물려 돌아가서 사운드의 공백 없이 이야기가 꽉 차게 되면 나도 가벼운 희열감을 느낀다. 마치 마라토너가 러너스 하이를 겪는 것과 비슷하다. 열띤 소통 후에 집으로 돌아갈 땐 너무 지쳐서 멍해진다는 점까지 완주 후의 컨디션과 비슷하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자주 나의 이런 성향을 토로한다. 친한 직장 동료분에게도 이따금 이렇게 툴툴거린다.


"오늘 저녁에 약속 있는데, 가기 싫어 죽겠어요."


"근데 가면 잘 놀잖아."


"맞는데, 그래도 가기가 그냥 싫어요."


직장 동료는 내가 괜한 엄살이라도 피우는 양 설레 설레 고개를 젓는다. 정말 외향적인 사람은 나의 외향적인 척하는 기질에서 오는 본질적인 피곤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아무튼 조화로움에 드는 품도 종종 사용해주지 않으면 녹이 스는 모양이다. 오늘 간만에 출근을 했다. 회사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스몰 토크에 그 '조화 이루기'는 간만에 거미줄을 툭툭 끊어내며 굴러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 시원찮다. 스몰 토크는 연쇄적이기도 하고 충동적이기도 한 형태로 빈번하게 발생했다. 결국 난 피로감을 이기지 못하고 사람들이 몰려서 웅성거리는 틈바구니에서 빠져나와 내 자리에 안착했다. 귀에 헤드셋을 끼고 코드를 바라보며 썩은 동태눈을 한 채 멍하니 음악을 들었다.


왠지 얼른 집으로 돌아가서 혼자가 되고 싶어 지고야 만다.


21. 0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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