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불행, 비가 와서 침몰한 일

1일 1커밋 #31

by 김디트

오늘 아침에는 비가 왔다. 비가 오는 날은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데, 오늘은 굳이 따지자면 싫은 날이었다. 그야 우산을 거머쥐고 물웅덩이를 피해서 해야 하는 출근길은 유쾌할래야 유쾌할 수가 없다. 오늘은 연말 정산 때문에 반드시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집이 지하인 터라 일어나서 바로 날씨를 확인할 수는 없었고, 씻고 나와서 날씨 예보를 들은 후에야 비가 온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서 한참을 가만히 고민해야 했다. 결국은 출근을 감행했지만.


그냥 날씨가 구리다는 이유만으로는 아무래도 불행을 운운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비 오는 날씨를 감내하고 출근을 하고 있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수없이 많은 무채색의 자동차들이 우산을 쥐고 버스를 기다리는 내 눈앞을 지나가는 걸 봐야 했으니까. 그런 일상적인 것들까지 불행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내버려두면 아마 남은 인생을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 인생을 꽤 잘 견뎌내고 있었다. 오늘 나의 불행은 별것이 아니라 신발에서, 그것도 신발 밑창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늘 신던 싸구려 캔버스화를 신었는데 그게 문제의 발단이었다. 찰박 찰박, 물이 고인 바닥을 차가며 길을 내려갔는데 왠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분이 나빠졌다. 언덕 중반쯤에 다달았을때는 기분 나쁨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진흙 위라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오른발이. 그것도 오른발만. 신발 깔창이 오른발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오른발을 들어 올렸는데, 신발은, 정확히는 신발 밑창은 반토막이 나서 마치 깊은 바다로 가라앉기 일보 직전인 타이타닉 호 같았다. 상태로 보아 아마도 승객 모두들 체념하고 음악가들의 마지막 연주나 듣고 있을 것만 같았다. 밑창 고무가 반으로 쩍 갈라져 있었고, 거기를 통해서 신발 깔창은, 그리고 밑창은 쉼 없이 바닥의 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하필 오늘은 흰 양말을 신고 왔는데. 제기랄. 그렇다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내려와 버렸다. 버스는 언제나 나의 마음을 급하게 만든다. 자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채 느끼지 못할 급박함. 모든 것이 맞물려서 딱 맞아떨어지게 버스 시간을 소화해내면 드는 그 환희와 만족감. 그리고 버스를 한 차례 놓치면 드는 깊고 검은 곤혹감. 내가 감내할 곤혹감이 오른발 양말이 회색으로 물드는 것보다 더 아플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나는 오른발을 찰박거리며 언덕을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비는 느리지만 꾸준히 쏟아졌다. 버스에서 잠깐 신발이 마른 터라, 그리고 그래도 빗줄기가 조금 가라앉지 않았나 싶었던 터라, 판교에서 하차할 쯤에는 찰박거리지 않기를. 제발. 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얼핏 보기에는 말라 보이는 바닥도 모두 은연중에 습기를 품고 있었고, 신발 깔창과 내 양말은 그 작은 습기 하나 놓치지 않고 물먹는 하마처럼 잘도 흡수했다. 나는 결국 찰박거리는 발로 회사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아서 신발을 거칠게 벗어던진 나는 신발을 가만히 노려봤다. 신발, 채 10개월도 신지 않은 신발은 그렇게 가만히 나의 시선을 감내했다. 제가 별 수 없을 것이다. 겨우 10개월 만에 밑창이 다 헤지고, 그것도 모자라 반으로 쩍 갈라지기까지 했으니까. 사실 밑창이 헤진 때부터 언젠간 벌어질 일이었다. 어느 눈이 많이 오던 날, 습관적으로 이걸 신고 나갔다가 그대로 지하철역까지 미끄러질 것 같은 위기감에 얼른 집 안으로 돌아가 다른 신발로 갈아 신고 나왔었는데 어떻게 벌써 밑창이 이럴 수 있을까 경악했었고, 그 후로 방치한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인 오늘, 신발은 그렇게 침몰하고 말았다. 다행히 회사에 여분의 신발을 두고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 침몰한 배를 타고 집까지 또 항해를 해야 했으리라.


오늘 점심, 회사 밖에서 식사를 하자고 나를 채근하는 회사 동료분과 밖으로 나서면서 나는 분개하듯 이런 경험을 공유했다. 회사 동료는 혀를 쯧쯧 찼고, 나는 왠지 나를, 그리고 신발을 변호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래도 만원도 안 하는 돈으로 산 신발인데 이 정도면 오래 버틴 거 아니에요?"


동료는 혀를 더 거세게 찼다.


"그러니까, 몸에 걸치는 건 좀 좋은 걸 사. 비싼 건 제 값을 한다니까?"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더 대꾸를 할 수 없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모든 원인은 그저 가성비에 따라 행동한 나의 잘못이었으니까.


"만원도 안 한다고 하면 무조건 사려고 하는 거 아냐?"


"... 근데 만원도 안 하면 사고 싶지 않아요?"


"아니?"


그랬다. 만원도 안 하면 사고 싶어 지는 건 보편적인 충동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 침몰한 것과 마찬가지로 만원 언저리의 가격을 가진, 헬스장 다닐 때 플랫한 바닥 지지를 위해 신던, 오늘 나의 예비가 되어준 캔버스화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언젠가 이것도 그 꼴이 나겠지, 과연 다음 신발은 어떨까 등등의 생각을 이어 나갔다.


다행히도 식사를 마치고 나설 때는 비록 흐릿흐릿한 날씨였지만 비는 온전히 그쳐 있었다. 난 식사 동안 오늘 침몰한 신발을 대신할 것은 조금 값나가는 것으로, 할인을 잘 노려서 사봐야겠다 하는 미묘한 결론을 내린 후였는데 그 미묘한 결론에 어울리는 날씨였다.


21. 0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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