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에코처럼 잠잠해졌다

1일 1커밋 #58

by 김디트

취향에 대한 고민을 일절 하지 않으면서도 취향을 즐길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내 나잇대의 많은 학생들처럼 나도 노래 부르는 걸 즐겼다. 사실 단순히 사실 즐겼다는 정도로 가볍게 축약하기엔 조금 아쉬울 정도로 빠져 있었다. 나의 용돈 중 대부분이 노래방 가는 용도로 쓰였으니까. 아마 취미라는 이름의 그룹이 있다면 그 센터 자리를 당당히 차지할 정도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였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고등학생의 평일이란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학교에서 연필과 공책을 붙잡고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거나, 혹은 그런 척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취향과 취미를 위해서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이란 주말뿐이었다. 주말마다 나는 내 절친 둘과 함께 의기투합해서 경주 시내로 신나게 떠나곤 했다. 시내 영화관 앞에서 만나자. 습관처럼 그런 약속을 잡았고, 늘 가던 노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노래방을 선택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게 두 가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격과 서비스를 후하게 주는가 여부였다. 결국 한 가지, 가성비로 축약할 수 있겠다. 우리는 친구의 친구가 준 정보나 소문, 경험을 총동원해서 가성비가 가장 뛰어난 노래방을 메뚜기처럼 찾아다녔다. 그 덕에 고등학교 3년 동안 수많은 노래방 컨셉을 겪어볼 수 있었는데 인터넷에 '흔한 20세기 말'이라며 올라오는 에일리언 컨셉부터 골방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좁은 곳, 작은 TV를 여러 개 연결해서 한 화면처럼 사용하던 곳 등 사람들의 취향 개수만큼 다양했다. 물론 앞서 말했듯 그 시절엔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었지만.


그 시절엔 버즈가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버즈 2집에 실린 대부분의 노래들을, 그 가사가 십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목청에 잔여를 남기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돌려가며 수차례 불렀다. 버즈뿐 아니라 다른 유행가들도 우수수 쏟아졌고, 우리가 빠져있던 일본 애니며 JPOP의 비주얼 락 같은 것들까지 더하니 부를 노래가 당최 마르질 않았고 결국 목청은 남아나질 않았다. 마른걸레를 짜듯이 마지막 서비스 시간의 1분까지 알뜰살뜰히 사용해 마지막 선곡을 마치곤 했다. 서비스가 더 들어오는지 여부는 5분여가 남은 시점에 30분이 추가되는지로 판단할 수 있었는데 우리가 가는 곳들은 대부분 2회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했었다. 가끔 너무 늦은 시간이면 끝없이 서비스를 넣어주기도 했었는데 그럴 때면 목소리가 도저히 나오지 않을 때까지 오기로라도 마이크를 놓지 않았고, 결국 하늘이 푸르게 밝아오기 시작할 때쯤에야 노래방에서 나서곤 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노래방 주인도 참 징한 놈들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노래방과 함께 우리의 3년이 흘렀다. 노래방 없이 사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겠다 싶을 쯤, 우리는 대학교며 뭐며 하며 서울, 대구, 부산 각지로 소원을 이룬 후의 드래곤볼처럼 흩어졌다. 그 후 명절이며 뭐며 간간이 만날 때면 물론 노래방엘 갔지만 술을 별로 즐기지 않고 공통된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었던 이유로 남는 선택지를 고른 것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때까진 노래방이라는 취미가 아직 살아남아 있었다. 그 증거로 나는 오락실에 붙은 낡은 코인 노래방을 습관처럼 들락거렸다. 하지만 절친들과 경쟁하듯, 하지만 조화롭게 합창하던 시절의 것과는 이미 결이 상당히 달랐다. 간만에 만날 때마다 우리는 늘 그걸 재확인해야 했고, 그런 아쉬움을 어떻게든 타파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미래, 결국 과거를 그리워하며 살게 될 나를 예견했던 걸까, 나는 자주 친구들과의 노래 앞에 녹음 기능을 켜 했다. 그 녹음 파일들은 간간히 나의 늦은 밤 청승 떨기에 도움을 주게 되었고 말이다.


그리고 또 그 후로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군대며 취직이며 온갖 세상의 노고를 겪고 우리는 서른넷이 되었고, 이제 우린 셋이 함께 만나기도 쉽지 않아졌다. 셋 중 하나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은 이유다. 그래서 이번 설에도 늘 그렇듯 나머지 하나와만 만나 간단히 연 단위의 회포를 풀어야 했다. 일 년 단위의 회포를 풀기에 가장 적절한 건 뭐가 있을까. 고함이라도 질러야겠지. 뭐 그런 이유도 있고 옛날 생각도 나고 해서 우린 또 노래방으로 향했다. 놀랍게도 친구는 아직까지 노래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았다. 노래 교습까지 받고 있다는 말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아마 옛날 같았으면 괜한 경쟁심에 나도 교습을 알아보고 말았을 텐데. 하지만 내 노래에 대한 열정은 불타고 남은 잿더미처럼 온기만 겨우 온존한 상태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냥 혀만 내두르고 말았다. 그렇다면 나머지 하나, 결혼으로 인해 새로운 관계의 소용돌이에 갇히고 만 또 다른 친구의 노래에 대한 열정은 어떨까. 작년 겨울, 겨우 시간을 조율해서 정말 오랜만에 셋이서 모였을 때 그 친구가 했던 말로 깔끔히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말고 그냥 당구장이나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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