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문화를 좌우하는 승룡권 커맨드
1일 1커밋 #59
오늘도 회사에서는 게임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회사와 게임이 참 어우러지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회사도 회사 나름이다. 게임 회사에서는 게임을 하는 게 지극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게임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게임을 만들 순 없는 일일 테니까. 그러니 좋아하는 걸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좋아하는 것들을 함께 즐기는 건 너무나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좋은 건 함께 해야 좋다고들 하니까.
나이 지긋한 분들이 게임 회사에 가지고 있는 편견, 게임하면서 돈 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걸 담담히 고백하는 걸로 오독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연하지만 아무리 게임 회사라고 해도 업무 시간에 본인의 취미생활을 마구 즐기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다. 일과 취미는 아무리 비슷한 카테고리라도 완전히 다른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게임 패드를 안 쥔다, 스팀을 실행시키지 않는다,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는 틀린 이야기. 개발 중인 게임에 한해서는 저 모든 것이 통용된다. 만들면서 플레이 한번 안 할 순 없는 일이니까. 그러니 좀 넓은 의미로는 게임하며 돈 번다는 말은 옳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단연코 취미의 영역에 있는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업무 시간이 지나고 야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시간이 되어서야 살며시 눈치를 보며 벌린 판이었다.
이렇게 회사에서 사람들끼리 옹기종기 게임을 즐겨온지도 벌써 햇수로 3년이 지났다. 발단은 이랬다. 회사 동료 한 분이 오락실 게임이 잔뜩 들어있는 2인용 스틱 게임기를 공동 구매 하자며, 회사에 두면 분명 재밌을 거라며 만원 이만원 거둬들인 것이 시발점이었다. 사실 십시일반 돈을 모으면서도 심드렁했다. 하면 얼마나 하겠어, 했던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 심정은 나의 많은 어리석은 예측들, 예컨대 핸드폰으로 노래를 듣는다고? 정액제 온라인 게임이 사라질 거라고? 가상화폐가 가치가 있다고? 하는 보수적임에 기반한 예측들과 같은 미래를 맞이하고 말았다. 게임기는 고장 난 스틱을 수차례 바꿔가며 아직까지 현역으로, 우리 팀 자리의 센터를 떡하니 차지하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 게임을 켤 때만 해도 연인 간에 방귀를 트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달깍거리는 버튼음을 내면서도 마치 뭔가 크게 잘못한 강아지가 흰자위를 보이며 눈치를 보듯 해야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앞의 예시, 방귀 트기와 같은 수순을 거쳤다. 몇 번의 플레이 후, 다른 팀들의 무언의 승인을 받은 이후로는 거침이 없어진 것이다. 우리는 꺄르르륵 크고 우렁찬 소리로 웃으며 게임을 즐겼다. 그러다가 본부장님의 '조금 자제합시다' 하는 말이 떨어질 때쯤에야 우리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게임기의 전원 버튼을 달깍하고 끄곤 했던 것이다. 그렇게 멈춘 게임 절제도 몇 주 가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어김없이 게임기를 켰다. 몇 차례 그런 일이 있자, 타 팀 사람들은 게임하는 우리 모습을 마치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부리처럼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눈치 보는 기술이 상당히 좋아진 연유도 있고 말이다.
우리 팀만의 독자적인 문화는 게임 외에도 다양하다. 점심때마다 회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이 왠지 불편해서 연말 블랙 프라이데이 때 우리 팀을 위해 내가 구비한 네스프레소 머신도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젠 없어선 안될 기계가 되었다. 심지어 팀원 중 하나가 또 하나를 산 덕에 이젠 버츄오 머신까지 생겼다. 회사 운영비로 캡슐을 사는 건 이제 월례행사가 되었다. 그리고 매달 말, 다 같이 모여 밤새 영화를 보며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도 비공식적인 모임 화가 이루어졌다. 우리 팀의 문화엔 아무런 제약도 통제도 없었다. 우리들이 나서서 하자, 하자, 으쌰 으쌰 한 결과물이었고 그래서 더 소중했다. 아마 그 문화와 교류가 팀원끼리 빈번히 국내 여행을 떠나는 발판 격이 되었을 것이고.
아마 조직 문화란 위에서 틀을 만들어두고 직원들을 끼워 맞추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자발적으로 그렇게 조금씩 저항하며 만들어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타 팀도 우리의 그런 자발적 문화에 자극을 받았다. 우리가 게임을 시작한 지 1년 여가 지난 시점, 기획팀도 게임기를 공수해왔다. 우리 것보다 좋고 게임도 많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 게임기는 며칠 잠깐 관심을 받고는 이내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었다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즉 회사에서 제공하는 것 이상의 문화가 우리 팀에는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조직 문화를 좀 더 탄탄하고 섬세하고 유서 깊게 만들고자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 판엔 반드시 승리를 거머쥐어야지 다짐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