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잉의 세상에서 지하철 타기
1일 1커밋 #60
할 게 없다. 아니, 집중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해야 할까. 멍하니 있기조차 집중하기 힘들다. 정신이 산만하고 불안하다. 뭐 이런 감정에 더 가까운 심정이랄까. 그런 게 자주 찾아온다. 주로 이동할 때. 지하철에 멍하니 앉아서 언제쯤 도착하려나 점멸하는 지하철역 노선도의 위치들을 점점이 시선으로 따라가거나 할 때 주로 찾아오는 편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런 순간이 찾아왔고 난 불안해졌다.
그 불안하고 불안정한 상태를 할 게 없다는 걸로 오해하는 것이 아마 가장 큰 문제겠지만 그걸 떠나서 할 게 없다는 오해부터가 참 요상하다. 온 세상과 연결되어 있어서 가만히 앉아서도 오만가지 것들에 대한 걸 실시간으로 받아볼 수 있는 기계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도 할 것이 없다니. 이 수많은 할 것을 앞에 두고 무료하다니. 온갖 게임 타이틀을 사두고도 그중 오늘 플레이할 게임을 고르지 못하는 마음과 비슷하려나.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할 게임 없다 하다가 결국 옛날에 좋아했던 게임을 켜는 것처럼 할 거 없다 투정 부리다가도 늘 들르곤 하는 사이트들을 한 바퀴 쭉 돌고 마는 것마저 비슷하다.
옛날에는 이런 위태로운 무료함이 없었을까? 괴로운 순간마저 즐겁게 필터링 해버리고 마는 내 기억을 믿을 수가 없는 터라 객관적으로 결론지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적어도 수많은 것들을 카드 셔플 하듯 쉼 없이 왔다 갔다 하는 위태로움은 없었다고 명확히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셔플 할 패가 많지 않았었으니까 당연한 일이겠지만. 어땠더라 떠올려보면 그때도 휴대폰을 꼼지락거렸던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전화, 문자, 큰 맘먹고 구매한 몇 천 원짜리 게임 몇 가지, 선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지 중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지를 고르려고 전전긍긍했었다는 점에 차이가 있었다. 누구에게 문자를 보내야 할까, 그리고 답문을 기다리는 중엔 어떤 게임을 할까. 최단거리 알고리즘을 구하기라도 하듯 핸드폰 사용 계획을 세우곤 했다.
즉, 그 시절엔 스마트폰 같은 올인원 만능 기기 같은 게 없었고 할 수 있는 것들의 경계선이 명확했기에 무료함을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겐 PMP가 없으니까 밖에서 영상을 맘껏 즐길 수가 없어. 나에겐 게임보이가 없으니까 학교에서 게임하기란 불가능해.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명확하게 설명이 가능하다는 건 아마도 그걸 수정하기도 수월하다는 뜻일 것이다. 마치 프로그래머가 버그를 잡기 힘든 이유가 재현 방법을 모르기 때문인 것처럼. 재현 방법을 알아내고 난 후에는 일사천리로 버그를 잡아낼 수 있는 것처럼. 그 때처럼 결여가 명확한 세상에서는 그 결여를 채울 여지가 있었기에 혼란스러운 무료함이 없었던 게 아닐까.
명확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떡해야 할까. 정보든 문제든 현상이든 차고 넘친다. 인터넷이 뿜어내는 수많은 정보는 가만히 있는 것을 저지하고 얼른 남들을 따라 뛰지 않으면, 뇌를 혹사시키지 않으면, 유튜브라도 보지 않으면 도태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눈을 현혹시킨다. 어떤 토막 건강 상식에서 쉰다고 하며 인터넷을 하는 것은 전혀 휴식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온전한 휴식은 뇌를 쉬기 해주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그 시간에는 핸드폰을 끄고 눈을 감고 명상을 하라고 했다. 그렇게 쉬운 일을, 가만히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거기 핸드폰이 없는 셈 치는 정도의 일을 나는 빈번히 실패하곤 한다. 수많은 시간 관리 책에서 간혹 물리적으로 휴대폰을 배제하여 아예 유혹을 느낄 상황을 만들지 않는 방법을 권유하는 것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지하철에 앉아서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고 핸드폰을 갖다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싸돌아다니고 싶은 욕구를 겨우 참고 그나마 글이라도 써야겠다는 조금 기특한 생각에 닿은 것이 다행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