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61
뭔가가 끝이 보인다는 건 과연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인생을 제법 살았지만, 그리고 꽤 많은 끝을 마주했었지만 아직까지 명확한 답을 내릴 수가 없다. 가령 업무 시간의 경우엔 끝이 다가오면 코드를 보다가 시계를 보다가 시선을 하도 왕복해서 눈이 따가울 지경이 되는 걸 보면 좋은 일인 것 같다가도 또 휴일을 생각해보면 또 완전히 반대로 일분일초가 아까워서 게임과 시계 사이로 시선이 갈팡질팡하니. 예문들을 적고 보니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루한 일은 빨리 끝낼수록 좋고, 재미있는 일은 늦게 끝날수록 좋다. 하지만 세상사 모든 것이 흑백 논리로 풀리지 않는 것이 순리인 것이다. 업무가 너무 재미있어서 끝나지 않았으면 할 때도 있고, 주말이 너무 지루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순간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며칠 전, 대학교 선배이자 동거인은 무덤덤하게 3월 24일, 수요일이면 끝이라고 했다. 뭐가 끝일까.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선배의 눈을 보고 나서야 이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선배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바로 그 카페의 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배는 말을 이어갔다. 일요일에 한 번 오라고. 마지막이니까. 말투는 무덤덤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알겠다고, 애인과 함께 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애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결국 그렇게 되었구나. 하면서. 결국 그렇게 된 것이 잘 된 것인지 잘 안 된 것인지 애매했기 때문에 애매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나도 애매하게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일요일 저녁 애인과 함께 카페를 들렀다. 뭐 먹거리라도 조금 챙겨가야 하나 하고 물었으나, 선배는 빈 손으로 와도 된다고. 마지막 회포를 풀기 위한 자리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커피를 대접하기 위한 자리라고 했다. 물론 정말로 선배가 내리는 마지막 커피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선배는 이미 다른 카페에 취직한 상태였으니 선배의 커피를 마실 기회는 아직 많았다. 동거인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카페의 그 도구와 그 원두로 그 분위기를 맛볼 수 있는 건 마지막일 터였다.
어둑한 카페는 마치 잠을 청하기 전처럼 나른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왠지 감성적이 된 우리는 익숙한 소파, 흰 벽, 창틀을 순서대로 눈으로 쓰다듬었다. 이제는 이 카페 못 오는 거냐고 애인이 너스레를 떨자, 선배는 다음 사람도 카페를 하니 찾아오면 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하지만 이미 끝나버린 영화를 다시 틀어도 처음의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없는 일이다. '안 본 눈 삽니다' 하는 농담에 담긴 것처럼.
선배는 높임말과 조금 딱딱한 어투를 섞어가며 미소 지었다. 딱딱한 미소였다.
"자, 처음으로 나갈 커피는."
커피들이 작은 잔에 담겨서 하나 둘 우리 앞에 나왔다.
선배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특별히 원하는 맛이 있냐고 물어왔고, 원두를 선별했고, 커피를 내렸다. 핸드드립으로 시작해서 에스프레소 베이스, 그리고 부드러운 라떼 베이스의 아인슈페너로 이어졌다. 우리는 진지하게 카페의 끝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커피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애인도 고민을 거듭하며 맛을 느끼려 노력하는 듯했다. 비록 정적의 틈 사이사이로 쉴 새 없이 농담을 던지면서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끝'의 느낌을 희석시키려고도 노력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끝이었다. 꽤 쌀쌀한 날씨였기 때문에 우리는 외투를 여미며 마지막 일요일을 맞이한 카페의 문이 닫히는 것을 바라보았다. 선배는 먼저 집으로 돌아가겠다며, 애인 바래다주고 집에 오면 보자며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몸을 돌려 카페에서 천천히 멀어졌다. 애인의 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면서 애인과 카페의 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끝'에 대해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잠깐 다시 고민해 봤지만 역시 잘 모르겠다.
그래도 마지막 커피는 참 맛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