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밤과 나는 별 일이 없다

1일 1커밋 #69

by 김디트

밤도 무게가 있는 모양이다. 천천히 하지만 착실하게 내려앉은 밤의 그 묵직함이 어깨를 꾹 눌렀다. 오늘은 특히 더 무거운 걸 보니 아마 밤도 오늘 하루가 고됐던 모양이다. 별 수 있나. 지쳐서 움직이지 못하는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낼 수 있을 정도로 나의 인심이 박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지하철에서 꿈뻑 조느라 어깨 위로 갑자기 올라오는 옆사람 머리의 무게감을 감내하는 심정으로 밤을 견뎌냈다.


별 일도 없었는데. 참 이상하다 싶었다. 안부 인사로 쓰일 때는 별 일이 없다는 게 참 좋고 고마운 일일 텐데. 막상 일상의 매일매일을 '별 일 없음' 스티커로 덕지덕지 붙여나가다 보면 이상하게 마음이 무거워지니. 뭔가 새로운 일 안 생기나 싶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파티션 너머를 훔쳐보기나 하고.


아마 밤도 오늘 너무 별 일이 없었던 모양이지. 어깨 위에 얹어져 있는 밤을 놀래키지 않기 위해서 버스에 달린 창문을 사이에 두고 밤의 면면을 찬찬히, 꼼꼼히 살폈다. 밤은 밝은지 어두운지 모를 얼굴을 하고 빠르게 나를 스쳐 지나간다. 늘 그렇고 그런 얼굴이구나 싶었고, 늘 별 일이 없는 얼굴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별 일이 없다는 것 자체가 슬픈 게 아니라 내일도 별 일 없을 것이라는 게 슬픈 거로구나. 나도 밤도 내일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뻔히 보이는 것이, 바로 그 지점이 슬프고 묵직하고 그런 것이었구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어깨에 기댄 채 밝은 듯 어두운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밤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히 행동하는 정도가 변하지 않을 내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 같아서 그렇게 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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