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밤은 밤새 함께 어울리고 싶다
1일 1커밋 #79
생각만 해도 피로감이 물씬 솟구친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과 그 아래에 혼자만 환하게 라이트를 밝힌 나. 어둠과 함께 깔린 정적. 귀를 틀어막고 빵빵하게 음악을 틀어봐도 틈을 비집고 고막으로 스며들어 오는 그 정적의 밤. 아침이 다가올수록 마치 뜨거운 사우나라도 한바탕 하고 나온 것처럼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 하며, 흐려지는 눈앞. 그 무엇보다 잠깐만 누워도 눈꺼풀이 잠길 것이 분명하다는 그 확신과도 같은 졸음. 깊은 밤이 가져오는 그 완벽한 무드를 완전히 씹어 먹어버리는 피로함. 그 존재감 강한 피로감 때문에 나는 썩 밤을 지새우는 게 달갑지 않았다. 마치 날밤 지새우는 것과 굉장히 친밀한 관계일 것만 같은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어릴 땐 밤을 지새워야 한다고 하면 그 순간부터 가슴을 두근거렸다. 일찍 자야 한다고 귀에 못이 박힐 만큼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금단의 선을 넘는 그 긴박하고 아슬아슬한 두근거림. 설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두근거림일지도 모르겠으나, 어릴 때 그 수많은 종류의 두근거림을 일일이 구분하며 나열하기는 쉽지 않았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친구 집에서 잠이라도 잘라치면 늘 오늘은 반드시 밤새자! 하고 위풍당당히 선언하곤 했다. 물론 그 선언은 선언장에 지장 같은 걸 찍는 비장한 종류와는 결이 달랐고, 우리는 늘 잠에게 침탈당해 이불을 백기처럼 펼치고 누워서 잠들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밤샘에 어떤 목적과 기대가치 같은 걸 둔 사람이 나뿐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친구 중 하나는 늘 엄격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제 자자고 하곤 했고, 나머지 하나는 그 친구가 엄격하기도 전에 나가떨어져서 코를 골곤 했다.
그런 로망 가득한 밤샘의 시기를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밤샘은 슬슬 놀이보다는 의무, 내가 나에게 주는 속죄의 의식과 비슷한 방향으로 변질된다. 아마 학창 시절을 겪었다면 누구라도 한 번은 겪었을 것이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지점에 다달아서야, 이제는 밤을 새도 무리일 것이 뻔한 상황이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 책상 앞에 앉는 그 비장함. 그 비장함에 비해 결과는 형편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는 할 만큼 했다'는 기분 정도는 가득 채울 수 있었고, 그걸 바탕으로 자주 억울해했다. 그 억울함은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서, 머리가 조금 굵어지고 내 편이 꼭 참은 아니라는 만고의 진리를 드디어 조금 깨친 후에야 조금 잦아들 수 있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물론 그거 조금 깨치다고 도피성 밤샘이 줄어들진 않았다.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별개인 데다가, 그 깨달음이 게으름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빈번히 과제를 가방 한구석에 꽁꽁 숨겨둔 채 친구들과 웃고 떠들다가 마지막 날 바로 전날이 되어서야 그 웃고 떠들던 무리들과 함께 동아리방 한쪽을 차지하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곤 했다. 우리 학교의 컴퓨터 구조, 알고리즘 수업 과제들은 고되기로 유명했기에 우리는 자주 밤을 새워야 했다. 노트북 키보드를 달깍거리며 새우등과 거북목을 한 채 새벽의 정적에 몸을 맡기는 모습이 아직까지 눈앞에 아른거린다. 새벽에 젖어서 아마 우리 미래도 이런 모습이겠지 뭐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은데. 다행이랄까, 불행이랄까. 그렇게 되었구나 싶었다.
뭐 그렇게 되었다곤 하지만 사실 밤을 지새우는 게 그렇게 잦은 일은 아니다. 가끔 마감이 다가오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들이 분주해지고 그 분주한 일감들이 퇴근하려 하는 나의 발을 꽉 붙드는데 그럴 때가 바로 간만에 밤을 지새우는 날이다. 몇몇 회사를 지나오면서 느낀 것이 있다면 바로 회사의 질과 밤을 꼬박 지새우는 일정은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크기와 회사의 질도 비례한가 하면, 지금까지 나의 경험상으로는 그렇다고 해야겠지만 그것까지 인정해버리고 싶진 않은 순진한 마음.
그렇다곤 해도 이따금 밤을 새우고 싶은 때가 있다. 컨디션이 엉망진창이 된 다음날을 완전히 날리게 되어서 오히려 시간적으로 손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럼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게 오늘이었다. 따뜻하고 포근한 오늘 같은 밤은 왠지 밤새 함께 있어주고 싶어 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