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회사 동료분과 끊임없이 사담을 나눴다. 무슨 이야기로 시작했더라. 기억에 일부러 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한 한없이 사사로운 이야기들이었다. 이를테면 날씨 이야기. 오늘은 정말 봄인지 여름인지 헷갈리기에 충분한 햇살이었다. 어제는 내가 커피를 얻어먹었으니까 오늘은 내가 사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있었고, 그래서 점심을 먹고 난 후 동료분에게 바깥으로 커피를 사러 가자고 말했던 터라 우리는 그 여름을 닮은 따가운 햇살을 그대로 등에 이고 카페로 걸어가던 중이었다. 그래서 유달리 이런 말들을 입에 담을 수밖에 없었다.
"더워요."
"그러게. 왜 이렇게 덥냐."
뭐 그런 시덥잖은 더위 이야기로 오늘의 사담을 시작했다. 오늘의 커피 메뉴는 어제처럼 그 카페의 시그니처, 초코 파우더를 뿌린,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라떼. 차가운 것과 달콤한 것은 왜 이렇게 잘 어울리는지. 그 차갑고 달콤한 걸 입에 쪽쪽 빨아 당기면서 날씨에서 시작한 이야기를 쭉쭉 이어 나갔다. 어느새 이야기는 '날씨'에서 '무기력', 그리고 '삶의 재미', '취미와 여행'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고 덕분에 날씨와는 제법 거리가 먼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문득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바닷가에 텐트 치고 하는 가족여행 같은 건 안 가세요?"
"음. 안가."
"그렇구나."
나는 입맛을 다셨다. 나의 유년시절 여름의 가장 임팩트 있는 기억은 주로 해수욕장과 해수욕 같은 것들에 있었다. 동료 분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옛날에는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내 다시 고개를 저었다. 요새는 잘 안 가지 않나? 캐리비안베이 같은 곳을 더 많이 가지. 하면서 말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여행 삼아 바닷가에 갔던 게 언젠지 가물가물했다. 온갖 취사도구와 먹거리와 아이스박스와 그런 것들을 바리바리 싸서 자동차에 꾸깃 꾸깃 쑤셔 넣고 출발하는 그런 여행. 옛날, 할아버지가 살아 계시고 나와 동생이 어렸던 그 옛날엔 매년 연례행사처럼 바닷가를 향하곤 했다. 가족이 딱히 엄청나게 화목해서 그렇진 않았던 것 같고 그저 삼촌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하는 효도의 성격이 짙었다. 잔뜩 들뜬 어린 우리들관 다르게 어른들 사이에서는 그런 암묵적인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곤 했다. 엄마가 '귀찮고 힘들다'고 지나가듯 이야기했었던 기억이 이상하리만치 강렬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물론 엄마의, 숙모들의 그런 노고들을 깊게 공감해줄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하지 않았던 나는 한 손에는 동생, 다른 한 손에는 튜브를 끼고 바닷가로 달려 나가기 바빴지만. 그런 전통 있는 연례행사도 할아버지의 몸이 나날이 편찮아지고 나를 비롯한 아이들이 성년이 되어서 독립을 하기 시작하면서 끝이 났다. 아마 우리들의 유년기의 모습을 할아버지 할머니의 눈꺼풀 뒤에 새겨주는 것도 효도의 일부였던 것일 테다.
그리고 내 인생의 첫 여행지도 바다였다. 아직까지 절친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있는 둘과 지금은 연락이 끊긴 친구, 그리고 내 동생. 고등학교 때의 일이었다. 엄마가 본인이 아는 친구분이 하는 횟집이 있다고, 정 바다에 가고 싶다면 거기 방을 하나 빌려서 묵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했던 것이 시발점이었다. 경주 밖으로 나가면 그야말로 꾀꼬닥 죽고 마는 줄로만 알았던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애들과 논의했다. 아마 바리바리 짐을 쌌던 것 같다. 그리고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몇 번이고 되뇌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야 그때는 스마트폰 같은 최첨단 원인올 기기가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시절의 피쳐폰은 전화에 문자 기능이 추가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혁신적인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버스를 타고 바닷가를 한참 굽이 굽이 달려 도착한 감포 바다는 나의 목숨을 옥죄긴커녕 어디 세게 부딪히기라도 한 것처럼 눈 앞을 번쩍이게 했다. 더군다나 시내로 나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것과 그리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나의 세계가 한 꺼풀 껍질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세계가 껑충하고 크고 높아지는 그 순간을 아직까지 간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첫 여행은 가치가 있었다. 그날 밤 심한 태풍이 몰아쳐서 나무가 실시간으로 쓰러지는 걸 처음 보게 되었다는 것도 제법 가치가 있었고 말이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바다로 쉽사리 향하지 않는다는 점은 내 마음을 이상하게 자극했다. 그래서 회사 동료분에게 이렇게 대답하는 것으로 현실을 부정하며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했다.
"우리만 그렇고, 사실 다른 사람들은 아직 바닷가로 여행, 많이들 가는 거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