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강박과 시행착오

1일 1커밋 #81

by 김디트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고 하니 엄마는 말했다. 아직 30킬로인데도 그런데 50킬로는 어떻겠다고 말이다. 말하자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은 격이긴 했다. 하지만 남의 고통이 나보다 크다는 것이 나의 고통을 없애주진 않는 것과 같은 이치처럼 아무튼 나의 시간이 예전에 비해서 한없이 빨리 흐르는 건 사실이었다.


갈수록 시간은 빨리 흘렀고 난 안달이 났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안달을 내기 시작했던 건 군대 시절. 입대 이전에는 그만큼 허투루 시간을 보냈으면서 막상 군대에 입대하고 나니 억울하게 흘러가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아까웠다. 우물에서의 물 한 방울과 사막에서의 물 한 방울 가치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였을 것이다. 아무튼 몸서리치게 그 일분일초가 아까웠고, 그 결과 자기 계발에 집착 비슷한 것이 생겼다. 시간만 생기면 책을 붙들었고, 연습장을 펼쳤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베베 꼬인 집착 때문에 더 중요한 다른 것들을 보지 못하고 일차적인 계발에만 신경 썼었지만 그때는 그런 걸 알 만한 경험도, 지식도 없었다. 그래서 필연적이었던 그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업무보다 개인 정비를 우선적으로 여겨 오히려 일을 크게 만든다거나 하는 것이 대표적인 실착이었다. 그것들을 아직까지도 가끔 범해버리곤 하는 걸 보면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건 아니구나 하게 된다.


돌이켜보면 아마 그 시행착오들이 바로 인생의 주행 속도를 좌우했던 건 아닐까 싶다.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채로는 속된 말로 대가리가 깨져가며 그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었다. 단번에 피드백을 알 수 있는 시행착오는 행운이나 마찬가지였다. 보통은 짧아도 달 단위, 길면 연 단위로 시행착오를 이어가야 했다. 깜깜한 밤길을 더듬으며 걷는 기분이라면 적당한 예시일까. 밝을 때 걸을 때는 정말 짧고 쉬운 길이라도 어두울 땐 한없이 길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나의 대표적인 시행착오는 앞서 말했듯 군대에서 잘못 스타트를 끊어버린 업무에 대한 태도다. 나의 자기 계발에 대한 집착은 업무 중에도 종종 나를 괴롭히곤 했다. 이를테면 빌드 중의 그 짧은 자투리 시간 같은 것. 난 그 시간이 도무지 너무나 아까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랜 기간 그 시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책을 읽거나, 도움이 되는 인터넷 글을 읽거나, 내 개인 코딩을 잠깐 건드린다거나.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매스미디어가 수없이 떠들어댔으니, 이는 정답에 가까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잉여 시간이 남지 않도록 가득 채워서 살아가기. 하지만 내가 시행착오라 언급하며 시작했듯 이는 완벽한 착오였다. 하지만 그게 착오라는 걸 인정하기란 쉽지 않았다. 시간을 꽉꽉 채워서 사는 게 왜 착오란 말이지? 아마 과거의 그 집착 쟁이 나에게 '그건 진짜 실수하는 거야'라고 지금의 내가 직접적으로 찔러 말하더라도 그 시절의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지금의 나와 이야기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발을 동동 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빙글빙글 돌아서 가야 하는 좁은 산길처럼 돌아서야 나는 그 시간에 대한 강박을 조금 벗어던질 수 있었다. 그 사이에는 꽤 많은 번아웃이 있었다. 번아웃은 어김없이 강박이 최고조에 다달았을 때 찾아왔다. 아마 정신력의 총량을 쉼 없이 넘나든 결과일 것이다. 사람은 사실 멀티태스킹을 하기 힘든 뇌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강박, 집착은 그 작고 여린 내 여린 뇌에게 수없이 멀티태스킹을 강요하고 있었다. 효율성이 최악이었던 셈이다. 하나에 집중하지 못한 터라 결과물도 최악에, 정신력까지 고갈되어 번아웃이 찾아왔으니 결국 그 방법은 착오에 불과한 것이 뻔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몇 번이고 이렇게 생각하며 넘어갔다.


'난 왜 이렇게 집중을 못할까.'


마치 가스 라이팅을 당한 사람처럼 난 구조적 결함을 결코 인정하지 못하고 쉴 새 없이 자책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행착오를 깨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진리처럼 여기고 있는 룰을 깨뜨리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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