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1커밋 #82
호텔 조식을 먹던 참이었다. 뷔페식이었고 그래서 몇 차례 분주하게 발을 놀리다 보니 접시가 가득했다. 종류가 조금 적고 대신 질적으로 조금 괜찮은 뷔페였는데, 그래서 두 접시 정도를 채우자 거의 모든 메뉴를 입에 넣어볼 수 있었다. 한 줌씩 나름의 질서와 조화를 갖춘 채 접시 위에 올라가 있는 음식들은 함께 조식을 먹는 이 친구들과 함께 보내온 시간만큼이나 정리되어 있었다. 조금 감회에 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우리에겐 고등학교 때 가성비와 특별식 느낌을 모두 갖춘 한식 뷔페를 자주 간 역사가 있었다. 그때 고기 종류만 가득가득 꾹꾹 눌러서 가져온 그 접시와 지금의 접시를 상상 속에서나마 비교해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불규칙적이고 불균형적인 것이 이렇게 정갈하게 바뀌다니 싶으면서.
친구 둘 중 하나는 어제 갑작스럽게 둘째를 가지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나는 조금 놀랐다. 육아의 고됨에 대한 귀동냥도 많이 들어왔던 데다가, 얼마 전까지도 육아의 고통에 대해 은연중에 피력하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벅찬데 둘을 상상할 여유가 있으리라고는 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가족이란 관계성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친구도 그 관계성의 영향 아래 아무튼 둘째를 계획하게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친구는 나름대로 즐거워 보였다. 친한 회사 동료 분도 이따금 '결혼하면 다 안 좋지만, 아들 보는 맛이 있어서 버틴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물론 나는 '그것도 아들 사춘기 지나면 끝이에요-' 하며 깔깔 웃었지만. 친구도 아마 그 회사 동료분이 느끼는 부성애 같은 것이 충만한 상태였다. 그 애정 충만한 모습은 바라보기만 해도 뭔가 뿌듯하고 즐거워지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나도 저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을까, 뭐 그런 환상 비슷한 동경 같은 게 생긴달까.
다른 친구도 나와 비슷한 그런 동경 엇비슷한 느낌을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음식을 목구멍으로 구겨 넣으며 친구와 아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던 와중 다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이 널 많이 좋아하나 봐. 나도 자식 키우고 싶다."
하지만 아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발산하던 친구는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행복의 이면에 있는 고통들에 대해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마치 여름 하면 밝고 빛나는 태양, 반짝이는 바다 같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푹푹 찌는 온도, 녹아내리는 아스팔트, 왱왱 시끄럽게 날뛰는 모기들도 있다고 하는 것처럼 당연하지만 소소하고,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럼에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마 평생 여름을 겪어보지 못한 에스키모인은 그 미묘한 감정을 결코 읽어낼 수 없을 테지만.
가족, 특히 자식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친구는 자신이 아들의 놀이 담당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화장실 갈 때도 따라와서 지켜보는 아들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던 참이었다. 다른 친구는 눈을 반짝이면서 '그럼 와이프보다 널 더 좋아하겠네?' 하고 물었다.
"지금은 내가 더 많이 놀아주니까 나를 더 좋아하긴 하지."
그 친구의 말에 친구는 눈을 더 반짝이며 에스키모인처럼 이야기했다.
"그럼 나중에 자라서도 널 더 따르겠다."
친구는 잠깐 수저를 멈추고는 눈을 반짝이는 친구를 잠깐 바라보았다. 친구의 눈빛에서 뭔가를 찾아내려는 듯. 그리고 이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때가 되면 아빠보단 친구가 우선이겠지.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나와 다른 친구는 입을 다물었다.
우리가 겪었던 그 경험이 친구의 말과 자연스럽게 합쳐지면서 우린 그 상황을 생생하게 상상할 수 있었다. 친구의 아들이 자기 무리들과 함께 뛰어 나가는 모습. 집에서 가만히 그 뛰어나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아빠의 모습. 그건 마치 친구만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굴었던 그 학창 시절의 우리의 모습이었다. 고기를 산처럼 쌓아 먹으며 몇 시간이고 뷔페에 죽치고 앉아 있던 그 시절의 우리. 아마 친구들 역시 나와 같은 걸 상상했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우리 부모님의 모습이 되어서 지켜보는 묘한 감각. 우리는 이제 그 시절보다 그 시절의 부모님과 더 가까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문득 궁금했다. 과연 그 '친구가 우선이던 세계'에서 언제 이쪽 세계, '어른의 세계'로 넘어오게 된 것일까. 세상의 룰이었던 우리 관계는 대체 언제 재정립되어서 이런 형태가 된 것일까. 정갈하고 예쁘게, 하지만 재미없고 단조롭게. 마치 고기만 쌓았던 그 옛날의 뷔페 접시가 우리 앞에 놓인 이 정갈한 접시로 변한 것처럼.
하지만 이미 변한 룰은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조금 체념하고 남은 빵 조각을 입에 구겨 넣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