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은 주로 서점에서 합니다
1일 1커밋 #90
이따금 시간이 비면 어김없이 서점으로 향한다. 새로운 책을 사고 싶어서? 그런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명확히 그런 마음을 먹고 움직이는 건 아니었다. 그냥 햇살이 하얗고 노랗게 내리쬐고,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그런 기분 좋은 날씨를 맛보기 위해서, 그런데 어디든 나가려면 목표는 있어야 해서. 그런 이유로 가장 만만한 곳을 찍은 것에 불과했다. 처음 서울에 상경했을 때는 주로 한강 주변을 기웃거리곤 했는데, 주머니 사정이 제법 넉넉해지고 나니 아무래도 사색에다가 추가로 소비까지 가능한 곳으로 산책 경로가 확장된 것이다. 아마 누군가가 의류 매장을, 누군가는 액세서리샵을, 소품점을, 제각기의 취향과 소비와 상상을 곁들일 장소로 선택하고 나가듯이 나는 서점을 선택한 것일 뿐이었다.
서점도 서점 나름이다. 일반적인 대형 서점으로 가면 물론 전반적인 장르의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들을 한번 쭉 훑는 건 당연하지만, 내 시선은 곧 그런 주류의 책에서 벗어나 나의 전공 서적들로 향하게 된다. 신간은 뭐가 있고, 어떤 책이 많이 팔리고 하는 것들을 눈대중으로 살핀다. 주로 앞 가판에 나와서 세로로 쌓여있는 책들이 요새 잘 소비되는 것들이다. 잘 사용되는 언어, 도구 같은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프로그래밍의 트렌드를 점검하고 조금 뒤적거리다 보면 대형 서점에서의 볼일은 끝이 난다. 물론 볼일이 끝났다고 해서 곧장 집으로 가지는 않는다. 혹시 정말 정말 사고 싶어 질 책이 구석에 숨어있진 않을까 하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어서 몇 바퀴나 서가를 뱅글뱅글 돌게 마련이다.
하지만 독립 서점에 가면 나의 행동은 완전히 뒤집힌다. 작건 크건 독립 서점들은 각각의 특성이 있고 책들도 그 특성에 큰 결을 맞춰 배치되어 있다. 마치 백화점에서 보는 그릇과 편집샵에서 보는 그릇의 형태, 요긴함, 감성의 차이 같은 간극이 대형 서점과 독립 서점 사이에도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 컨셉형 서점에서는 나의 취향보다 서점을 꾸민 주체의 취향이 우선된다. 나는 마치 미술관을 관람하는 심정으로 서점의 특성을 관람한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취향이 있고 책이 있고 분위기가 있다는 걸 난 독립 서점 탐방에서 조금씩 알아갔다. 그 덕분에 조금 겸허해졌다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사실 특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책을 사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난 주로 독립 서점으로 향한다. 향하고 싶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다양하고 새로운 관점과 취향은 나를 통과해 가면서 나를 조금 바꿔 놓는다. 어디를 바꿔 놓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좋고 그런 이유로 그 바뀐 지점을 더듬고 새로워진 나를 찾아가는 과정, 사색까지 겸할 수 있게 된다. 한강에서 잔잔하고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사색과는 조금 다른 경험이다.
더군다나 정말 마음에 드는 걸 발견하면 아무튼 집어서 바로 돈을 지불하고 가방 속에 쏙 넣어서 올 수 있다는 점이 특히 좋다. 정말 그 취향이 나의 인생에 편입될지, 그냥 책장의 색감을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고 끝날지는 집에 가봐야 아는 일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