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향 앞에서 난처해지기

1일 1커밋 #89

by 김디트

간만에 지인들과 만나서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는 원체 인맥 풀이 좁은 관계로 사람들과 밖에서 잘 만날 일이 없는데, 사실 인과 관계를 명확하게 하기 힘든 일이다. 사람들과 밖에서 자주 안 만나니까 인맥 풀이 좁은 걸지도 모르지. 아무튼 간만에 만나면 할 말이 무진장 많아야 할 것 같은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역시 고정관념은 고정관념일 뿐이다. 자주 만나지 않으면 할 이야기는 되려 떨어지는 모양이다.


드문 드문, 이야기가 이어질 듯 말 듯하는 중에 지인 하나는 손을 번쩍 들면서 나를 콕 집어 이야기했다.


"영어 공부하자!"


그 지인이 나를 보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그 지인은 정말 많은 취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이라고는 하지만 벌써 1여 년은 된 것 같다)에는 영어에 푹 빠져 있었다. 사실 영어에 푹 빠진다는 느낌을 도저히 알 수 없는데, 아마 코딩에 푹 빠진다는 걸 영영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겠지. 아무튼 정말 '푹 빠진다'는 말을 혼신을 다해서 실천하면 그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정열적으로 취향을 수행해 나가는 모습을 간간히 접했다. 이를테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영어 공부를 몇 시간 한다거나, 원어민들과 친구가 되어 대화를 나눈다거나 하는 것들. 하면 정말 좋다는 걸 누구나 알지만, 정말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대로 들지 않는 그런 일들을 쑥쑥, 쉽게도 해나갔다. 아마 정말 쉽게 해 나간 건 아닐 테지만.


이번에도 나는 최대한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사실 프로그래머라면, 아니 그 누구라도 영어는 정말 필요한 능력 중 하나일 것이다. 아마 중요 능력을 1순위부터 차례 차례 꼽자면 10순위 안쪽으로는 간단히 랭크인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에도 나는 미래의 나에게 그 일을 떠맡기듯 넘겨 버리고야 말았다.


내 정형화된 일상에 뭔가 새로운 취향을 끼워 넣는다는 건 제법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왜 용기 씩이나 필요하게 되어버린 걸까. 아마 '하고 싶은 걸 지속하는 방법' 따위의 문장이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 위에 놓이게 된 이유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취향에 접근하길 꺼려하는 모습을 보인다. 분명히 하고 싶고, 나아가서 잘하고 싶은 일임에도 막상 해보라고 하면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 지인에게 지었던 그 난처한 표정을 매번 꺼내 든다.


내 절친이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함께 매일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이따금 마음이 내킬 때면 '1일 1그림'의 모토를 걸고 의욕 넘치게 시작했다가, 어느 순간 서서히 흥미를 잃어서 그만두곤 했는데, 또 의욕이 한 번 샘솟을 때가 된 것이다. 그래서 요새 오렌지 색 조명을 분위기 있게 밝혀두고 침대에 기대어 앉아, 무릎 위에 태블릿을 얹고는 펜을 가만히 쥐고 있는 상황이 자주 연출된다. 선을 하나 둘 겹쳐 그으면서 머릿속에 있는 어떤 이미지를 명료하게 바꿔 나갔다. 내 생각대로 잘 조형이 이루어지면 정말 즐거울 텐데. 그림은 이따금 즐거웠고, 더 빈번하게 곤혹스러웠다. 그리고 슬프게도 이번에도 그랬다. 펜보다 지우개 툴을 더 많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림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그냥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싶어 진다.


그렇게 괴로워하다 보니 그 지인의 '영어 공부하자'는 말 앞에서 지었던 나의 난처한 표정이 자연스럽게 해석이 되었다. 나는 이제 취향의 발전 과정이 그리 순탄지 않다는 사실을 체화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매니아적으로 취향을 발전시키는 게 얼마나 지난한지, 얼마나 낮은 문턱에 걸려서 좌절하게 될지, 또 얼마나 쉬운 이유로 그 취향에서 탈락할지. 취향의 좋은 면 반대쪽에 있는 안 좋은 면을 휴리스틱적으로 인지했던 것이다.


그럼, 이러다 보면 새로운 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는 건 아닌가? 나는 침대에 기대서 또 한 번 난처한 얼굴이 되어야 했는데, 결국 이 난처한 얼굴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또 한 번 다른 방식으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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