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휴가를 끝내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침대에 누워서 꼼짝하지 않고 연휴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아직 채 완전히 정리되지 않아 여기저기, 마치 멈춰놓고 도망친 업무들이 가시적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은 형태의 짐들이 쌓여있는 방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아무래도 휴가의 휴는 휴식의 휴가 아니라 한숨의 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뒹굴럭거렸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한 오늘. 애인은 오랜만에 일해서 컨디션이 안 좋은 것 아니냐는 연락을 해왔다.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나의 과거의 말을 인용하면서 말이다. 정확히 그런 마음으로 터덜터덜 퇴근하고 있던 차였기 때문에 정곡을 찔린 심정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재택 하는 인원이 많아서 회사가 조용했다. 정적으로 가득 차서 왠지 내가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죄스러운 기분이었달까. 여러모로 불편하고 발걸음이 무겁고 그런 밤이었다.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검색창에 '여행 이유'라고 적어보았다. 여행의 순기능이란 대체 뭘까. 원래의 페이스를 마구 어지럽히고 그 사이사이에 일시적인 기억과 행복을 어거지로 쑤셔 넣는 일이 바로 여행이 아닐까.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일상의 모든 것들을 도저히 그렇게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여행에서 난 도저히 장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터넷의 내용을 훑었다. 내 예상관 다르게 김영하 님의 '여행의 이유' 관련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었기에 이내 홈 버튼을 눌러 브라우저를 비활성화 해버렸다.
김영하 님은 여행의 이유에서 '후회할 일은 만들지를 말아야 하고, 불안한 미래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리게 된다.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라고 했다. 나는 그 밑에 밑줄을 쫙 긋고 '그야말로 여행의 이유'라고 조그맣게 필기를 해두었다. 아마 여행을 간 지 꽤 오래되었던 때의 내가 적었던 게 아닐까. 여행에서 뭔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분 좋은 희망감. 정체되어 퇴행하는 기분으로 현실을 마냥 수긍하고만 있는 현실에 대한 악의. 그때의 내가 갈겨쓴 '그야말로'라는 글자에는 그런 감정들이 깃들어 있었다. 결국 이번 여행도 나를 바꿔놓긴 한 모양이다. 이전의 나를 제삼자 바라보듯 보게 되는 걸 보면.
지금 이렇게 본래의 페이스로 돌아가기 힘들어하는 이유도 김영하 님의 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미적거린'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되려 여행에 대한 경험치가 너무 적어서 현재에 데려다 놓은 그 새로운 경험들을 체화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거고, 그래서 원래 궤도로 돌아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라면 많은 것들이 설명이 된다. 서투른 초보자는 중급자 이상이 손쉽게 해내는 모든 것들을 온몸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가면서 하게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좋다'는 말은 그 얼마나 좁은 세계관 속에서만 통용되는 말일까. 나는 얼굴을 조금 붉히면서 여독에 대한 누군가의 포스팅을 읽었다. 그 누군가는 여독을 풀기 위해 재빨리 다음 티켓을 예매하고 기대감을 만들어둔다는 본인만의 팁을 설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