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자기계발 사이에서 안달복달
1일 1커밋 #94
언제부터인지 늘 안달하면서 살고 있는 듯싶었다. 당장 지금도 난 안달이 나 있다. 12시쯤엔 잠을 자야 하는데, 그러니까 얼른 글을 쓰기 시작해서 몇 시쯤에 글을 마무리하고, 대충 손을 보고 나서 그 후엔 코딩도 조금 하고 시간이 남으면 책도 조금 읽고 그러다가 잠에 들면 되겠다. 시간을 대략 30분 간격으로 끊어서 방금 떠올린 일들을 차곡차곡 쌓아 본다. 쉴 틈 없이 그 모든 걸 처리해 나가야지 12시를 딱 맞출 수 있는 수준의 계획이다. 시간의 손실 없이 이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글을 쓰다가 물도 한 잔 마셔야 하고 어질러진 방도 찬찬히 정리해야 하고 내일 회사 갈 가방도 꾸려야 한다. 그 작고 사소한 일들도 모이면 30분은 거뜬한데 그런 것들은 전혀 고려가 되지 않았으니 애당초 성공할 수 없는 계획인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업무 마감일이 다가오는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굴리게 된다.
이 안달의 시작은 대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군대에서부터 시작된 안달이었다. 입대 후의 나는 집요하게 시간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군대는 시간 날리는 짓이다'는 말을 귀 따갑게 들어왔기 때문일까. 나는 이래 봬도 은근하고 소심하지만 꽤나 거센 반항심을 마음속에 감춘 사람이다. 그런 말을 고이 넘길 리 없었을 것이다. 절대 군대에서 시간만은 날리지 않아야겠다. 뭐 이런 다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대학교 1학년과 2학년 1학기를 그렇게 허무하게 날린 사람이 한 결심 치고는 거창했다.
시간을 진지하게 대하는 것이 처음이었던 터라, 아무래도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다. 자바 책을 한 두장 더 읽어보려고 책상이 고르지 못한 치열처럼 삐뚤빼뚤하게 배치된 연등 방으로 매일 밤 기어가듯 갔다가 꾸벅꾸벅 졸기만 하다가 돌아온다거나, 아침 구보를 뛰고 와서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억지로 몇 장 넘긴다거나, 읽은 내용을 까먹을세라 얼른 수첩에 옮겨 적고는 금세 관물대 안에 처박아 놓는다거나. 그래도 제법 노력이 가상했다. 그 덕분에 계획법을 실천하는 동기, 즉 계획을 해냄으로 인해 얻는 성취감의 기쁨 같은 걸 처음으로 학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오늘도 계획을 세우는 것일 테고.
그렇게 나름대로 용을 써서 보낸 군대 생활이었지만 한 가지만은 정말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그게 뭐였냐면, 치명적 이게도 군대에서 맡은 내 주 업무였다. 나는 사단 경리부로 예하부대에 필요한 예산을 할당하고 그에 대한 증빙을 관리하고 매달 적절하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내역을 철을 해서 보관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단순한 일이지만, 그 시절의 나에게는 단순하지 않았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을 배워 나갔으나, 쉽사리 터득할 수 없었다. 선임에게 머리를 쥐여 터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런 데다가 야근까지 잦았으니. 나는 심통이 났다. 야근을 하면 내 개인 정비 시간을 빼앗기고, 그에 따라 내가 세운 계획을 철저히 따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심통 때문에 일을 배우는 게 더 더뎠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심하지만 꽤나 거친 반항심을 갖추고 있으니까 말이다.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업무에 대해 제법 정통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너무나 지난했고 고통스러웠다. 난 끝까지 입을 삐죽 내민 채로만 경리 업무를 대하다가 전역을 했다.
큰 줄기로 보면 경리 업무를 잘 배우는 것도,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생활을 습득해 나가는 것도 결국 나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의 짧은 머리로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않았다. 그저 만화영화를 볼 시간에 리모컨을 빼앗긴 어린아이처럼 심통을 부리면서 억지를 썼다. 하지만 어릴 때나 통하던 그 방식은 어른이 된 세계에는 전혀 통용이 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결국 나는 '군대는 시간 날리는 짓이다'는 말을 몸소 체험해 보이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전역하고 나서도 꽤 오랫동안 군대 생활을 실패했다고 보지 않았다. 좁게 보면 시간 관리법도 조금이나마 체화해 왔고, 성격적인 면에서도 제법 외향적인 척 꾸밀 수 있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 이면에는 더 큰 손실이 있었다는 사실을 꿈에도 모른 채로. 그러다가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것도 안달하다가 깨달았다. 회사에서 끊임없이 안달하고, 또 안달하다가.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들을 방탕한 시간 낭비쯤으로 대하면서 빨리 퇴근해서 집에서 책이라도 한 줄 더 읽고, 개인 코딩이라도 몇 줄 더 하고 싶다는 그런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차서 업무에서 수차례 실수를 거듭하고 난 후에야. 그제야 나는 나를 안달하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편협한 것들인지, 내 하루의 3분의 2를 방탕한 시간 낭비로 여기는 것이 얼마나 나를 부정적이게 만드는지 따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안달해 온 것 치고는 상당히 늦은 깨달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