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이 먼 자동차처럼 살기

1일 1커밋 #95

by 김디트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꽤 지루한 일이다. 안면식이 없는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북덕거리는 버스나 지하철은 되려 지루할 틈이 없다. 주변의 공기를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나의 관심사에 집중할 수 있다. 오죽하면 지하철을 도서관처럼 활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앞서 말한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바로 자가용을 뜻한다. 내가 운전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그것도 친한지 데면데면한지 정말 애매모호한 관계 사이에 놓인 사람이 운전할 때 지루함은 극대화된다. 이걸 지루함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표현일까. 어렵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려우면 지루하니까 결국 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모르는 수학 공식들이 눈 앞에 오열 종대로 모여 앉아 있으면 꾸벅꾸벅 닭이 모이 쪼듯 고개를 까딱거리게 마련이니까.


조수석에 앉는다는 건, 운전자를 우선적으로 1:1 마킹하겠다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이다. 내 눈동자는 탑승할 자동차가 점차 가까워질수록 더욱 빠르게 굴러갔다. 나이 순으로 치면 마땅히 불편한 조수석을 차지해야 할 사람은 나였기 때문이다. 서열 권력은 이렇게 하찮고 사소한 일들에서 손쉽게 힘을 발휘한다. 그 하찮음으로 피권력자들의 목소리를 간단히 묵살시키는 것이다. 이 무리 내에는 서열을 굳이 소리 내어 내세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무리 중 한 분이 잽싸게 조수석에 올라탔기 때문에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쉬며 뒷자리에 자리할 수 있었다. 운전자 분과 사이가 두터운 분이었기에 든든하기도 했고.


자동차는 마치 오한이 든 사람처럼 잠깐 움찔거리더니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갈 길이 멀어서일까, 차가 고급형이기 때문일까. 자동차는 서두르는 감 없이 엣헴 엣헴 헛기침하는 선비처럼 움직였다.


뒷자리에 앉았다고 해서 자동차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소임에 외면할 수 있는 특권을 얻는 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난 진땀을 빼며 이 말에 맞장구, 저 말에 맞장구, 장구채를 이리저리 현란하게 움직여가며 대화의 박자를 맞췄다. 덩더러덩덩덩... 갈 길이 멀었기 때문에 이 사물놀이도 굉장히 길었다.


그러다 궁색 맞추기로 대충 틀어놓은 배경음악으로 주제가 넘어갔고, 조수석에 앉은 분은 얼른 선곡 담당이 되어서 적당히 모든 사람들의 귀에 잘 녹아드는 배경음악들을 선곡했다. 차내의 곳곳까지 사운드가 꽉 차오르자, 사람들은 차츰 입을 닫았다. 사실 사운드가 비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시시껄렁한 농담들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열차처럼 주워섬겼던 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제야 왁자함 속에서 정적을 즐길 수 있게 된 나는 드디어 편안한 자세를 취하면서 창 밖으로 시선을 던질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핸드폰을 과도하게 오래 만지작거린다거나 잠을 잔다거나 하는 건 운전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즉 창 밖으로 내던진 내 시선을 거둬들일 괜찮은 대체재가 없었고 난 꽤 오랫동안 창 밖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문득 우리나라는 실은 생각보다 잉여 땅이 많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는 서울에, 경기도권에 완전히 녹아들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경주 시내만 가도 참 세상이 넓고 복잡하게 느껴지던 시절을 완전히 망각한 것처럼 굴고 있었으니까. 아무튼 정말 좋은 성능의 압축 툴로 압축한 것만 같은 서울의 모습과는 정말 대비되는 풍경이었다. 이렇게 땅이 많은데 서울 집값은 대체 왜 가파르게 상승하고만 있는 걸까.


제대로 농사를 짓는 땅들이 줄줄이 이어지는 것 같다가도 순간적으로 잡초들이 잔뜩 우거진 땅이 불쑥 튀어나왔다. 그러다가 굉장히 성기게 엮은 그물 모양으로 배치된, 몇 채 되지 않는 갖가지 집들. 조립식으로 간편하게 지은 것 같은 집도 있었고 폐가가 아닐까 싶은 집도 있었다. 가장 으리으리한 집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아마도 이 마을의 가장 높은 사람이 거주하는 집일 테지. 뭐 그런 선입견도 조금씩 섞어가며 빠르게 나를 지나치는 집들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러다 보면 왠지 그런 곳, 내가 살아보지 않은 삶을 상상해보게 되곤 한다. 이런 작은 마을에서 살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외지인이니까 혼자서 외롭게 살겠지. 농사를 짓더라도 크게 짓진 못할 것이다. 텃밭 수준으로 가꾸면서 프로그램 외주 같은 걸 받아서 힘겹게 해내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회사에 다니는 것보다는 불안정할 테지. 그리고 시골은 인심이 좋다는 말도 옛말이고 텃세가 굉장히 심하다고 하니 집단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르지. 갑자기 불쑥 집에 찾아와서 식사 같은 걸 권리처럼 당당히 요구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불길하고 어두운 상상을 끝없이 하면서도 그곳의 삶을 상상하는 걸 왠지 멈출 수가 없었다. 새로운 삶을 꾸려보길 왠지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들을 연달아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야 했는데, 조수석에 앉은 분이 오랜 정적을 깨고, 막 시작된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운전자 분의 어그로를 끌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퉁명스러움을 연기하면서 얼른 차 세우라고, 졸음 쉼터에서 세워서 저 소음 공해 원인을 내버리고 다시 가던 길을 가자고, 그 어그로의 맞장구를 치며 이 길고 긴 여정으로 다시 포커스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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