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짜리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아이가 '말'이란 것을 하기 전에는 이 아이의 목소리가 참 궁금했다. 옹알이나 우는 소리가 아닌 또박또박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목소리 말이다.
말을 하고 나서부터는 대화를 하다 보면 어찌 세상에 이렇게 티 없이 맑은 존재가 있을까 생각이 든다. (도치맘이 되고 싶지 않지만 자꾸만 도치맘이 되게 만드는 아이를 탓해 본다)
지난 주말에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나있는 남편의 얼굴을 한글 수업 교재로 활용했다. 수염 난 모양이 마치 '소'자를 연상시켰다. 손가락으로 남편 수염을 따라 그리며,
"이것 봐. 여기 '소'가 있네." 하니
아이는 남편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힘 있게 한 마디 던진다.
"음메~ 해봐."
그 후로는 남편은 소가 되어 '음메'를 몇 번이나 반복했고 아이는 젖을 짜주겠다며 남편의 티셔츠를 몇 번이고 잡아당겼다.
며칠 전에는 (외) 할아버지, (외) 할머니의 관계에 대해 알려 주었다.
"외할머니는 엄마의 엄마야."
"응?"
햄스터 같은 두 눈에 동공 지진이 일어났다. 마치 '엄마한테도 엄마가 있었어?'라고 되묻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혼란을 준 것 같아 살짝 미안해지면서 나도 어렸을 때 엄마가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났다고 믿었듯이 딸도 그렇겠구나 싶었다.
알아서 스스로 깨달을 때가 오겠거니, 더 이상의 설명은 하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