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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집밥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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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HYE Jan 11. 2022

딸바보와 꼬치전


명절이 아닌데 명절 음식이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면 문을 열자마자 풍겨오던 기름 냄새가 떠오른다. 대식구라서 명절 전날부터 모여 설이면 만두를, 추석이면 송편까지 만들었다.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동그랑땡, 꼬치전, 김치 녹두전도 부쳤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나서는 나도 '전 부치기'에 동원되었다. 할아버지 차례상에 올릴 것은 접시에 담아 놓고 그 이후로 동그랑땡을 부치면서 집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전은 자고로 부치자마자 따끈따끈 할 때 호호 불면서 먹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꼬치전은 보이지 않았다. 음식 가짓수가 너무 많아서 할머니께서 줄인 것 같았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가 어느 날 TV 프로그램에 나온 꼬치전을 보니 옛날 생각이 떠오르면서 참을 수 없이 먹고 싶어졌다.



꼬치전은 단무지, 맛살, 쪽파, 김밥용 햄이 필요하다. 모든 재료를 5~6cm의 크기로 자르고, 이쑤시개에 단무지-쪽파-햄-쪽파-맛살의 순으로 꽂아 부침가루를 입혀 준 다음, 달걀물을 입혀서 부친다.



기름 냄새가 솔솔 풍기니 마치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다 부친 꼬치전은 남편과 아이에게 맛보게 했다. 뜨거워서 끊임없이 내뿜는 입김과 함께 엄지 척을 날려 주었다.




양을 넉넉하게 해서 대나무 바구니에 담아 친정으로 가져다 드렸다. 내가 전을 부쳐서 부모님께 드리게 될 줄이야.



아빠는 내가 만들어 온 꼬치전으로 반주를 하셨다. '맛있다'는 표현에 인색하신 편인데, 딸이 가져온 음식이라 그런지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옆엔 딸바보를 바라보는 뾰로통한 표정의 엄마가 계셨다. 이번엔 엄마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우리 집에도 딸바보 한 명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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