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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Sep 26. 2021

옛날 노래는 위험하다

사연 없는 노래가 있을까?

키즈카페에서 아이와 놀고 있는데, 대학시절 유명했던, 러브홀릭스의 'butterfly'의 리메이크 버전 노래가 흘러나왔다. 비록 원곡도 아니고, 리메이크 버전을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그 노래가 나를 그때 그 시절로 돌려보내기엔 충분했다. 그 노래(의 원곡)는, 내가 대학교 3학년이던 2009년, 정부지원 대학생 일본 파견단으로 나가 멤버들과 불렀던 노래였다. 숱하게 연습한 덕에 어떤 파트에 누가 불렀는지까지도 마치 VR처럼 눈에 선했다. 그리움과 함께 약간의 불쾌감도 몰려왔다. 함께 '썸'을 탔던 몇몇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 번 연락이나 해볼까? 그냥 그 노래를 들으니 그 시절이 생각나네요~ 이마를 칠 뻔했다. 그만해라... 나는 얼른 현실로 돌아왔지만, 왠지 모를 향수에 집으로 돌아와 그 러브홀릭스의 그 'butterfly'를 틀었다.


엮인 추억이 어떻든, 그것이 달든 쓰든(대부분 실패한 사랑의 기억이지만) 유난히 그 시절의 필름과 함께 재생되는 노래가 있다. 임창정의 '소주 한잔'은 중3시절 잠시 연애했던 동급생이, 일락의 '편한 사람이 생겼어'는 대학시절 내가 바짓가랑이 잡으며 따라다녔던 선배가 떠오른다. 어느 하나 그리 유쾌하지 않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3년에 한 번 가까이 만취할 때쯤 들어보곤 한다. 우습게도 그들의 모습이 완벽히 떠오르지도, 그들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너무나도 선명히 떠오르는 것은, 그냥 그들에게 온전히 빠져들었던 순수했던 내 모습이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한 번 마음을 준 사람에겐 늘 나의 모든 것을 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게 상대방에겐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았나 보다. 스치는 노래 한 곡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그(들)'를 떠올리는 나와 달리, 나는 그들에게 그 노래처럼 지나가는 인연에 불과했던 것 같다. 사람은 떠나고, 노래는 남았다. 나는 그렇게 노래 하나에 추억과, 노래 하나에 사랑을 차곡차곡 담았다.


세월은 곱절로 흘렀다. 예전처럼 사랑노래에 나를 주인공 삼는 일도, 지나가는 노래에 사연을 담는 일도 드문 일이 되었다. 무엇보다 옛날만큼 많은 노래를 듣는 일이 적어졌고, 뽀로로와 카봇 노래를 노동요로 삼으며 그나마 남은 어른 감수성은 팝송으로 채우게 되었다. 멈춰 버린 나의 가요 업데이트 속, 학창 시절을 함께하며 2000년대 중반과 2010년 초반까지 흘렀던 많은 노래들은 수많은 '주마등'이 되어 불현듯 찾아왔다. 그것은 나를 가끔 그렇게 과거로 돌려보낸다. 그들에게 '... 자니?'를 보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다만 나를 다시 현실로 돌려놓는 것은 '너무 많이' 흘러버린 세월과, 장난감 소리가 난무하는 키즈카페의 어수선한 분위기다.


옛날 노래는 위험하다. 그때 그 노래를 듣던 사연 많은 내 모습은 이제 없다. 그런데 그때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내가 '여전한'사람인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나는 황급히 듣고 있던 'butterfly'를 꺼버렸다. 순식간에 2021년으로 돌아왔다. 나는 안도한다. 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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