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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Sep 29. 2021

난 슬플 때 운동을 해

유산소 운동 예찬론자입니다.

연이어 터지는 사건사고로 마음속에 여유가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한 글자라도 써보고 싶어 머릿속을 정리하다 보면 끊임없는 우울감이 자리 잡아 내 글을 나 스스로도 읽는 것이 피곤하다. 마음속의 먹구름이 가실 때까지, 내가 이 감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하루에 한 뼘씩 내 감정에서 멀어지다 보면 분명 좀 더 나의 지금 감정을 더욱 차분히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야근을 한 남편은 10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최근에 '플렉스'한 실내 운동기구로 한창 최대 심박수를 찍으며 운동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45분간의 운동을 마치고 다시 땅으로 내려왔다. 마음속의 먹구름이 한 10g 정도 사라진 것 같다.


운동을 좋아한다. 특히 유산소 운동을 매우 좋아한다. 복잡한 운동의 알고리즘에 대해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팔과 다리를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자면, 내가 지구 최고로 부지런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아이가 없을 때나 육아휴직 중일 땐 주로 새벽에 운동을 했었는데, 회사로 돌아간 이후에는 주로 저녁 운동을 하고 있다. 요즘 내가 빠져 있는 운동은 '마이 마운틴'이라는 실내 등산 기구인데, 나처럼 자유시간이 있어도 쉽게 집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최적이다. 적지 않은 금액에 연초부터 고민하다, 육아와 회사 일을 병행하며 송이송이 쌓이는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남편에게 선언해버렸다. "살 거야, 말리지 마!" 그렇게 나는 '플렉스' 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후회한다. 연초 고민 없이 샀다면 이미 할부의 노예도 끝이 나고 더 많이 즐길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이 잠이 들면,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는다. 왼쪽 손목에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오른쪽 손에는 이제 아이들이 모두 커버려 거의 쓸 일이 없어진 거즈 수건을 손에 쥔다. 상시로 놓아둔 실내 운동화를 신고, 운동을 시작한다. 평소에 진득하게 보지 못하는 영화를 틀어놓고, 45분, 한마디 말도 뱉지 못할 정도의 고강도의 운동을 한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는 거짓말이다. 45분은 정말 길다. 43분 30초... 44분 50초... 45분!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나를 이긴다.


운동은 나와의 끊임없는 싸움이다. 시작하는 것도 나 자신이고, 끝내는 것도 나 자신이다. 시간을 정해준 것도 아니고, 하지 않으면 당장 내일 당장 목숨이 위험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매일매일 루틴처럼 운동을 하는 것은, 운동이 가져다주는 자아 성취감 때문인 것 같다.


'해냈다'는 감정을 갖기가 쉽지 않다. 회사 일을 하면서도, 육아 일을 하면서도 쉬이 마음속에 다다르지 않는다. 항상 마음은 불안정하게 동동 떠있고, 퇴근을 할 때면 아이들 생각에, 아이들을 재우고 나면 다음 날의 출근일 생각에 마음이 마치 먼지가 낀 듯 부옇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질 때쯤 채우는 하루의 루틴은, 나를 그래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즐겨하는 운동은 그때그때 달랐다. 처녀 시절에는 10km 마라톤과 가벼운 마실 라이딩을 좋아했고, 아이를 낳고는 계단 운동에 푹 빠져 매일매일 100층이 넘는 계단을 올랐다. 한창 대란이었던 닌텐도 스위치의 운동 게임인 '링 피트 어드벤처'는 무려 임신한 몸으로 구입했다(물론 그땐 하지 못했다). 아직 둘째의 움직임이 많지 않을 때, 모빌을 보는 아이를 옆에 두고 화면을 보며 열심히 링을 꾸욱 꾸욱 누르다 보면 아이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육아의 무료함을 운동으로 풀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질 일이 많지 않은 요즘, 나는 그렇게 운동을 통해 내 심박수의 한계를 본다. 150, 160, 170까지 치달으며, 아찔해지는 순간 운동이 끝나고 나는 오늘 또다시 해냈음을 느낀다. 그것이 하루의 시작이든, 또는 하루의 마무리이든, 나의 새로운 하루는 운동을 통해 유의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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