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규뉴 Oct 03. 2021

맥시멀리스트의 딸이 미니멀리스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사지 않습니다

아빠는 퇴근할 때마다 교보문고의 종이봉투를 손에 들고 오셨다. 누적 소비금액 1억. 이 금액을 백화점에 썼다면 한 번쯤은 백화점의 발레파킹을 맡길 수 있을 정도의 충성고객이 되어 있었을 텐데. 아쉽게도(?) 아빠는 교보문고의 '베리 임폴턴트 펄슨'이었고, 그렇게 아빠가 쌓아온 충성의 산물은 고스란히 집안의 가구처럼 소복이 쌓였다.


어릴 때부터 미디어와 활자의 목마름을 겪어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늘 거실 크게 음악을 틀어놓은 채, 잡지나 책을 읽고 계셨다. 듣고 싶은 음악은 아빠의 음반을 조금만 찾아보면 발견할 수 있었고, 신간이 읽고 싶을 때면 아빠의 서재를 뒤졌다. 나에게 아빠의 서재는 '자원의 보고'였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반드시 우선 아빠의 서재에서 '중복 확인'을 할 것. 그렇지 않으면 같은 물건이 세 개가 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으니까. 아빠 것, 내 것, 그리고 오빠 것(엄마는 아빠의 구매력에 질려 절대 책과 음반을 사지 않으신다).


상경을 하면서 괴나리봇짐을  떠돌이 신세가 되면서, 아빠의 보물창고와도 자연히 멀어졌다. 고향에 돌아가면 서재의 신간을 탐독하고, 가끔 몇 권을 갖고 서울로 돌아오는 정도였다. 그러다 출판사에 취직을 하면서, 자연스레 나의 아담한 서울 집에도 한두 권씩 책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배가 불렀다. 하지만 그렇게 '책만 뜯어먹고 사는' 인생은 오래가지 않았다. 남편을 만났고, 결혼 전 자금 문제로 인해 얼마 간 나의 오피스텔에 함께 지내게 되었다. 나의 작은 집에 남편의 짐들이 들어왔다. 놀랍게도, 그의 짐은 내가 첫 상경했던 그 시절보다도 적은 것 같았다. 내 인생의 첫 번째 미니멀리스트를 만난 것이었다.


그것을 미니멀리스트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일단, 그는 물건을 사고, 쟁이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무엇보다 매우 불편해했다. 서울살이를 하며 도서관 이용이 잦아지긴 했어도 내 방엔 어느 정도의 읽을거리가 있는 편이었는데, 그의 짐에는 취미생활이라고 할만한 것들이 거의 없었다. 그저 읽은 것과 들은 것이 적은 것뿐이었는데, 항상 과도한 활자와 음악의 소음 속에 살아온 나에게는 적잖이 놀라운 일이었다. 내가 가진 문화의 아카이브를 공유하는 것을 단념한 나는, 대신 그의 '최소한의 자원과 최대한의 공간'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함께할 공간을 채우면서, 나는 갖고 있던 도서를 처분했다. 대신 이북리더기를 구매하고, 정기적으로 북클럽을 결제했다. 가끔 구매하는 실물 도서는 방 한 을 넘기지 않았고, 그마저도 더 이상 읽지 않게 되면 머지않아 중고 서점에 넘겼다. 그렇게 나는, 항상 책이 흘러넘치던 집의 딸내미를 졸업하고, 책이 없는 집의 집사람이 되었다.


나는 활자를 좋아한다. 읽는 것을 좋아하고 문맥을 파악하고 해석하는 걸 즐긴다. 책을 구입하는 것은 내가 활자를 좋아하는 것을 증명하는 일종의 자랑이었다. 방 한쪽 빼곡히 채운 책들을 자랑스러워했고, 그것을 종종 꺼내 읽는 것도 좋아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굳이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 책을 읽는 방법은 많다는 것을. 이북을 읽고, 넷플릭스에서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찜하듯 정기 구독하는 북클럽의 책들을 족족 다운로드한다. 책이 없는 집의 활자중독. 그게 바로 접니다. 저는 미니멀리스트의 아내입니다. 아버지는 맥시멀리스트입니다. 책을 좋아한다면서 책을 안 산다고 저를 욕하시겠어요? 저의~ 고향집으로~ 오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난 슬플 때 운동을 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