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 이야기 (상)
나의 첫 번째 다이어트는 실패했다
스물한 살, 나의 다이어트는 실패했다.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다이어트 열정의 살아있는 증거 마냥 러닝머신이 하나 있었다. 열아홉 살, 합법적으로(?) 살이 찌는 것이 허락된다는 고3 수험생이 되었지만, 살이 찌는 게 싫어 매일매일 러닝머신을 했다. 새벽 5시 45분, 교과서 같은 고3 일정에 맞춰 나의 기상 시간도 모범 답안 같았다. 살을 빼는 것이 목적이 아닌, 살이 찌는 게 싫어 시작한 것이었다. 운동과 함께 저녁을 고구마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고3 수험생의 엄마는 그렇게 매일매일 딸의 고구마 도시락을 싸 주었다. 플라스틱 통 가득한 고구마를 먹고 나면 항상 배가 든든했으니 분명 적은 양은 아니었을 것이다. 개수를 알 수 없는 고구마와 서울우유 200ml. 나의 저녁은 다이어트식인 듯 아닌 듯 아리송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예민한 수험생은 그렇게 첫 식이조절과 운동을 시작했고, 수능이 종료됨과 동시에 나의 고구마 라이프는 끝이 났다.
저녁식사로 고구마만 먹는 것은 멈추었지만, 습관으로 길들여진 나의 새벽 운동은 그렇게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 상경 후 하숙을 시작한 나는 가까운 헬스장을 등록했고, 수험생의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던 5시 45분에서 한 시간이 늦춰진 6시 45분마다 똑같은 일과를 시작했다. 가볍게 한 시간 남짓을 걸은 뒤 하숙집으로 돌아와 8시 20분에 아침식사를 하고, 9시 시작되는 1교시 수업을 들었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혀를 내둘렀다. "아주 부지런한 학생이야." 아직은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하숙집에서 기숙사로, 기숙사에서 자취방으로. 나의 서울 생활은 메뚜기처럼 보금자리를 바꾸었다. 생활습관은 그대로인데, 만나는 사람들과 먹는 음식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같은 눈금을 가리키던 체중계가 조금씩 우상향 하기 시작했고,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아, 내가 하고 있는 일련의 습관은 다이어트가 아니었던 걸까? 나는 점점 운동량은 늘리고 식사량은 줄이기 시작했다. 샤워를 끝내도 한 시간 반이 채 넘지 않던 나의 헬스장 체류 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유산소 운동을 좋아하던 내가 헬스 기구를 만졌고, 저녁에는 노트북을 보며 요가를 했다. 한 번도 먹는 양이 많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어쨌든 몸무게가 늘어나고 있는 것 같으니 밥양을 절반으로 줄였다. 그렇게 하길 한 달여. 오랜만에 본 동기가 나를 보며 놀랐다. "규뉴야, 왜 이렇게 살이 많이 빠졌어?" 그때 감량한 몸무게는 많아야 2킬로 정도. 아주 건강히 뺀 몸무게였으니 그르칠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 시절 지독한 첫사랑의 이별을 경험했다. 내 인생이 책이라면 그 페이지는 출간된 서점마다 찾아가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음침하고 음험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때의 나는 '잘 지어진' 고시텔에 살고 있었다. 보증금 100만 원에 월세 30여 만원 정도. 근처 대학생들에겐 최고로 인기인 고급 고시텔. 성적이 모자랐던 나는 기숙사에 떨어진 후 마침 자리가 난 인기 고시텔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딸이 기숙사에 떨어진 것을 나무라셨지만, 어쨌든 옮긴 숙소 비가 상당히 저렴하니 별문제 없이 비용을 대 주셨다(나중에 내가 사는 곳에 놀러 오신 엄마와 아빠는 큰 충격을 받으셨다 한다). 기숙사의 짐은 기껏해야 우체국 박스 두 개 정도였고, 가까이 살던 남자 동기가 나의 이사를 도와주었다. 성큼성큼 두 걸음이면 끝나는 좁은 방에 나 혼자 덩그러니 남았다. 시간은 많고 울 공간은 좁았다. 나는 내가 발 디딜 수 있는 공간 공간마다 과자를 쌓기 시작했다.
모든 음식이 먹고 싶었다. 지나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으면 들어가 과자를 샀고, 빵집이 있으면 빵을 샀다. 친구가 선물이라며 쥐어준 그 시절 핫한 '글레이즈드 도넛'. 모든 음식들이 우리 집에서 하룻밤을 버티지 못하고 스러졌다. 우울증에 가까운 감정의 침체를 느끼고 나는 그 집에서 도망치듯 휴학을 했다.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는 '할 것도 없으면서 왜 휴학이냐'며 타박하셨고, 나는 그렇게 서울에서 대구로 돌아온 첫날 캐리어를 끌고 다시 집에서 동대구역까지 돌아갔다(어떻게 집으로 돌아갔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병이 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병이 나을 리가 없었다. 북적거리는 집안에 과자를 쌓아놓고 몰래 한 상자씩 먹어치웠다. 쿠크다스 한 통, 꿀호떡 한 봉지.
우습게도, 지금 생각해 보면 내 모습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문제 있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입던 바지의 사이즈는 27인치에서 30인치 정도로 조금 늘었고, 실제로 최고로 몸무게가 늘었을 시절에도 나의 만삭 몸무게를 넘기지 않았다. 그저 '약간 살찐' 정도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계속해서 숨어서 먹는 습관, 특히 스트레스를 받으면 과자를 산처럼 쌓아 올리는 습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 운동을 놓질 못한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계속 좀먹었다. 이렇게 열심히 운동을 하는데도 왜 살이 빠지지 않지?
유학 시절, 나는 매일 아침이면 10km 조깅을 했고 저녁이면 마트의 과자를 쓸어 담고 파티를 했다. 운동은 내가 제일 열심히 했는데, 함께 유학하던 학생 중엔 내가 제일 통통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큰 아이러니였다. 어떻게 하면 살을 뺄 수 있지? 그렇게 열심히 운동과 폭식을 반복하며 집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남몰래 생각하셨다고 한다. '얘가 왜 이렇게 살이 쪘을까?'
그렇게 나는, 멈출 수 없는 과식과 운동의 굴레에 빠졌다. 무엇을 멈추어야 내 마음이 건강해질까? 당장 먹고 싶은 게 너무 많은데, 먹으면 살이 찔 것 같다.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질 것 같은데, 운동을 한 내가 너무 기특해서 먹는 걸 줄이는 게 너무 억울해 견딜 수 없어.
지금의 남편을 만나며, 다행히 나의 폭식 굴레는 조금씩 끊어졌다. 함께 하는 식사 시간이 많아지면서, 과자를 쌓아놓고 먹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자연스럽게 먹는 것에 대한 욕망도 사그라들었다. 난 사실 그렇게 음식에 집착하는 편이 아니었구나.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조금씩 돌아오는 건강한 마인드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남아있는 욕구불만은 그대로였다.
나는, 살을 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