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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뉴 Oct 18. 2021

'부지런한 무기력증'의 밤

인풋 없는 삶의 푸념

요즘 나는 한창 모든 것이 하기 싫고 피곤하다. 출근도 하기 싫고, 육아도 하기 싫고, 집안일은 말해 무엇하리. 운동은커녕 침대와 혼연일체가 되어 너무 배고플 때만 한 번씩 일어나 라면이나 끓여 먹고 다시 눕고 싶다. 어제는 그런 마음을 실천해 보고자 아이들과 비슷한 시간에 잠을 청해 보았다. 나의 아이들은 새벽 5시 30분도 되지 않아 잠에서 깨는데, 아침 9시가 지나도록 맑고 청명한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것은 그저 나이 탓인가요...?


'하기 싫다.' 무한도전에서 나온 박명수의 유명한 짤이 있다. "아우, 하기 싫어..." 상사가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곤 있지만, 아이가 떼를 쓰니 어쩔 수 없이 밥을 차리곤 있지만, 나는 요즘 모든 것이 그렇게 마이너스 플로우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내 밥도 안 차려 먹는데, 남의 밥 메뉴를 궁리하는 것이 너무 힘들고, 나에겐 눈을 감을 수 있는 순간부터가 밤이던데, 눈이 떠지는 순간부터가 아침인 아이들을 키우고 있자니 체력을 키워도 키워도 남아있을 여력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일상은 누구보다도 계획과 일정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가볍게 한 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출근하여 나인 투 식스 꼬박꼬박 일을 한 뒤 퇴근하자마자 다시 아이들을 픽업하는 삶. 나의 평일은 가끔 꿀맛처럼 찾아오는 '업무 시간 잠깐의 공백'을 제외하면 버릴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퇴근 후 아이들을 재운 뒤 찾아오는 나만의 시간엔 죄책감이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것이다.


읽고 있는 책도 없고, 즐겨 보는 TV 프로도 없다. 영화관에 가 본 적이 언제였더라? IPTV 영화는 작정하고 봐야 하는데 그럴만한 집중력이 떨어진다. 운동할 때 간간히 틀어 두는 것은 좋아하는 가수의 뮤직비디오 재탕. 벌써 몇 번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익숙함이 곧 편안함이고 운동 지속력이기에 바꿀 마음이 쉬이 들지 않는다. 즐겨 보는 유튜브 프로그램도 없고. 순간 정신이 확 든다. 나는 도대체 어떤 것을 인풋으로 하여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 그렇지만 아무것도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직장인 엄마의 하루가 소복소복 쌓인다. 오늘 밤엔 기운을 내 새로운 책이라도 읽어 봐야지. TV 프로에 정을 붙이진 못해도 보고 싶은 영화 두어 개 정도는 찜이라도 해 둬야지. 무기력함이 우울함으로 뒤바뀌기 전에, 정체되어 있는 스스로의 삶에 침잠되기 전에, 남들의 지식과 남들의 작품을 우걱우걱 먹어 치워야겠다.


글감은 쌓아두고 줄글이 쓰이지 않아 꾸역꾸역 얹어두는 글. 오늘의 글은 에세이보단 일기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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