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님들ㅜㅜ 학원은 어디서 알아보나요?
사교육과 엄마표 교육의 딜레마
요즘 첫째는 아이 같지 않다. 이건 모르겠지, 요건 못 알아듣겠지 하는 걸 얼마나 쏙쏙 잘 알아듣는지 이젠 애 앞에서 혼잣말도 못하게 생겼다. 유치원에서 받아온 같은 그림 카드 맞추기 게임을 곧잘 하기에, '로켓 배송'으로 딴딴한 하드보드지로 만들어진 같은 국기 그림 맞추기를 사주었더니, 얼마나 잘하는지 오늘은 드디어 첫 패배를 맛봤다. 내가 하도 못 맞추고 툴툴댔더니 첫째가 말했다. "엄마, 나한테 화 좀 내지 마요." 아차차, 이게 아닌데. 전적으로 내 잘못이기에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한국 나이 다섯 살이 되어 유치원을 다니는 나의 첫째는 아직 만 3살이다. 사실상 똘똘이 네 살에 가까운 첫째는 '마미 콩깍지'를 끼워보자면 나름 영특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첫째는, 14개월 즈음부터 본인 나름대로 물건을 표현하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물 주세요는 무~, 쪽쪽이 주세요는 부~. 그때는 몰랐지만, 돌이켜 보면 대단한 것이었구나 싶다. 평범한 둘째는 15개월이 될 때까지 물이 마시고 싶으면 울기만 했으니까(그래도 엄마는 알아들어. 엄마 멋지지?).
18개월부터 대충 알아듣는 말을 했고, 22개월쯤부터는 문장을 구사했다. 24개월이 넘자 평범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만 1살 반 시절, 첫째는 친구들에게 '아기'라고 불렸다. 말을 못 한다는 이유였다. 너무 빠른 어린이집 생활에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선택한 게 아닐까 싶어 일찍 말이 트인 게 안쓰럽기도 했다. 어쨌든 그렇게 첫째는 빠른 속도로 우리와 의사소통을 했다.
엄마는 내가 네 살이 되었을 때 한글을 배웠다고 했다. 나도 기억한다. '두리두리'. 방문 선생님이 찾아오셨던 것 같다. 엄마는 벽면 한가득 단어를 붙여두셨고, 나는 그것을 재미 삼아 읽으며 한글을 깨쳤다. 일곱 살 적에는 손바닥만 한 공책에 소설을 썼고, 아홉 살이 되었을 땐 연습장 한가득 만화를 그려 아이들에게 천 원을 주고 팔았다. 장사를 하는 딸은 엄마에 의해 제지되었다.
반면 남편은 농담 삼아 늘 얘기했다. "엄마는 내가 말을 못 하는 줄 알았대." 전혀 재미있지 않은 농담. 척척이 같았던 나와 달리 남편은 초등학교 전까지 기관에도 다니지 않았고, 한글도 초등학교에 가서야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나와 남편을 비교했을 때, 눈을 씻고 봐도 남편의 인간성이 훨씬 나으니 확실히 어릴 적의 속도가 앞으로의 30년을 좌우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유난히 빨랐던 나와, 유난히 느렸다는 남편. 곡선의 기울기는 달라도 그 끝이 결국 만났으니 나 스스로도 조기교육에 대해 꽤나 회의적인 편이었다. 다섯 살부터 영어학원을 다닌 나보다 대학시절 유학을 다녀온 남편의 영어점수가 더 높은 걸 보며 난 항상 스스로를 '조기교육 실패자'라고 떠벌리곤 했다(엄마 죄송해요).
그럼에도, 내 아이의 일에는 괜스레 늦게 출발하는 거북이가 되는 것이 옳은 일인지 토끼 엄마처럼 동동거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만 36개월을 넘기기가 무섭게 첫째의 어린이집 졸업 시기가 왔다. 육아휴직 중이었던 나는 친해진 첫째의 어린이집 엄마들과 앞으로의 교육 정보를 공유했다. 나는 곧 이사를 갈 예정이었던 터라 같은 기관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다섯 살의 기관 선택은 너무나도 무궁무진했기에 허투루 넘길 이야기가 없었다.
누구는 영유를 선택했대요. 누구는 놀이학교, 누구는 5살도 가능한 어린이집을 간대요. 따라 할 수 없는, 또는 따라 해도 될지 알 수 없는 그들의 진로(?). 나에게는 큰 허들이 있었다. 오전 등원이 가능할 것, 연장반을 운영할 것. 이 두 가지 필터만으로 주변의 많은 기관들이 우수수 탈락했다. 숲학교, 놀이 학교, 영어 유치원. 수많은 기능성 유치원들은 내 두 손만 믿고 사는 직장맘들에겐 불가능했다. 4년에 한 번씩 찾아온다는 육아 퇴사의 위기가 처음 도래했다. 나... 나에게는 빚이 있어! 애써 마음을 억눌렀다.
우리에게 가능한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7세 반까지 있는 어린이집. 다른 하나는 처음 학교로에서 추첨으로 갈 수 있는 유치원. 전자의 경우 3살 차이가 나는 둘째와 함께 다닐 수 있고, 연장 반도 운영한다는 메리트가 있었다. 다만 활동적인 아이의 경우 보육 위주인 어린이집을 지루해할 수 있다고 했다. 두 번째의 경우, 가장 큰 허들은 '추첨'이었다. 내가 원하는 유치원을 갈 수 있을까? 이사 간 동네에서 뚜벅이로 첫째를 보낼 수 있는 곳은 한 곳뿐이었다. 우리는 신중하게 유치원을 골랐지만, 행여 1 지망 유치원에 떨어지게 된다면 회사 근처의 유치원으로 통학해야 할 운명에 놓였다.
따단! 당첨입니다! 우리는 운이 좋게 첫 번째 지망하는 유치원에 배정되었다. 공립 단설 유치원이었다. 초등학교 소속이었지만 유치원 건물이 아예 따로 빠져 있어 급식도 달랐고 운동장도 따로 썼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공립 유치원은 누리 과정에 충실하기 때문에 사교육 수업이 없다고 했다. 영어, 한글, 체육 등은 오롯이 부모가 따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 앞 놀이터에서 둘째의 어린이집 엄마를 만났다. 그 집의 첫째가 마침 우리 집 첫째와도 동갑이었다. 얘는 그 유치원에 떨어져서 D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어요. 거기선 한글도 따로 가르쳐 준다더라고요. 체육 수업도 있다나 봐요. 나는 살짝 위기감을 느꼈다. 심지어 그 어린이집은 나의 선택지에도 없었다. 어린이집에서 그런 것도 가르쳐요? 나는 벙쪘다. 유치원의 학습 요강은 '달팽이를 키워봐요' '상추를 길러요' 같은 자연 농원 스타일이었다. 불만은 없었지만 위기감은 찾아왔다.
사실 나는 이미 첫째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다. 거북이 같은 아빠를 두었지만, 결국 내가 스타트 빠른 토끼에 빙의해 잽싸게 시작해 버린 것이었다. 가볍게 벽보로 시작했던 한글 공부는 한글 단어 맞히기, 한글 말놀이 노래 부르기, 한글 관련 영상 콘텐츠 보기 등으로 확장되었고, 첫째는 신기하게도 곧잘 따라 했다.
입학 예정된 유치원이 확정된 시기부터는, 매일 새벽마다 함께 한글 공부를 했다. 쓰기는 못해도 읽기는 할 줄 알아야지. 사실 초조함도 있었다. 나에겐 시간과 여유가 부족했다. 나에겐 과외 선생님을 붙일 시간도, 학원 라이딩을 해줄 시간도 없었다. 해줄 수 있는 건 내가 아이에게 붙어있는 것뿐이었다. 학습지 대여섯 권을 사두고, 한 권을 지루해하면 재빨리 책을 바꿨다. 그렇게 하기를 한 달 여, 아이는 마침내 한글을 모두 떼고 유치원에 입학했다.
이제 곧 첫째는 여섯 살이 된다. 또다시 유치원 입학 시기가 찾아왔다. 다섯 살이 되어 처음 유치원을 가는 집, 여섯 살에 유치원을 바꾸는 집. 주변이 조용히 어수선해지는 것을 느낀다. 맘 카페에 이런 글들이 자주 올라온다. '여섯 살인데 영유 가능할까요?' '영유 상담 다들 예약하셨나요?' 잘 다니고 있는 유치원을 놔두고 또 괜스레 초조해지는 마음에 나는 또 검색어를 요리조리 두드린다.
'방과 후 영어 학원'
나는 미처 몰랐다. 영어 유치원이 생긴 이후로 초등학교 전 다닐 수 있는 영어학원은 거의 전멸에 가깝다는 것을. 유치원 일과 후 영어 학원 또한 그저 영어 유치원의 '방과 후 수업'에 속한다는 것을. 결국 그것 또한 일종의 입학 상담이 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창을 닫았다. 나에겐 치맛바람 펄럭이며 학원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시간이 없었다. 사무실 구석에서 초록창을 요리조리 두드리며 주말에 가능한 수업이 있나 찾아볼 여력밖에 없는 나에게, 꽁꽁 숨어있는 '사교육'의 길은 마치 미로 같았다. 직장인 엄마들이 나중에 입시 정보에서 전업 엄마에게 밀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 그만두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데, 그게 벌써 내가 될 판이었다. 뭐라도 가르치고 싶은데 정보가 없다니. 김이 샌 나는 집 근처 문화센터 수업을 몇 차례 뒤졌다. 유의미한 '학습' 수업은 죄다 평일이다. 나는 팍 짜증이 났다.
사교육을 부정하지 않는다.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나의 아이가 학원 뺑뺑이를 다니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도 각오하고 있으니까. 아직 영어 수업이 깨나 급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나의 아이는 아직 연필 잡는 법도 서툰데, 잘 알지 못하는 언어로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아이에게 부여하지 못하는 교육 부재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내게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이 정도로 초조하지 않았을 텐데.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남편은 집에서 한글을 뗀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며 날 추켜세워 주었다. 나중에 집에서 조금씩 가르쳐 줘도 되지 않겠어? 느리고 서툴러도 엄마표 교육도 나쁘지 않지. 나는 또 한 번 솔깃한다. 기초 영어 정도는 내가 가르쳐도 되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홈스쿨링 학습'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사교육 탑승에 실패한 나는, 엄마표 야매 교육으로 어떻게든 구색 맞추기를 해본다. 언젠간 맘 카페에서 얻을 수 있는 양질의 정보들을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길 바라며. 기특한 첫째에게 떡 한 번 더 주며 오랜만에 책상 앞에 앉혀 보아야겠다. 아, 그전에 그림 맞추기 한 번 더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