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불운에 점수를 매긴다면
메리 코로나 크리스마스 앤 코로나 뉴 이어
나의 연말은 기대가 많았다. 토요일에 찾아온 크리스마스에는 집안 가득 꾸며둔 어설픈 크리스마스 장식을 즐기며 아이들과 케이크를 먹고, 나의 욕심으로 잔뜩 등록해 둔 첫째 아이의 문화센터 수업으로 남은 일과를 보낼 생각이었다. 나름 크리스마스 행사도 있지 않을까? 백화점 홈페이지를 샅샅이 뒤지며 모니터를 폰 카메라로 몇 장 찍어두기도 했다. 지하 식품관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온단다. 첫째가 좀 겁내려나. 그래도 진짜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면 좋아할 거야.
나의 계획은 첫째 아이 담임선생님의 코로나 확진으로 첫 번째 위기를 맞았고,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간 당일에도 마주쳤던 같은 반 아이들이 추가 확진되면서 진짜 위기를 맞았다. 아이의 자가격리. 그렇게 우리는 23일부터 1월 2일 정오까지 '방콕'했다. 어떻게 이렇게 연말을 화려하게 자가격리로만 보낼 수 있을까? 기가 차서 웃음이 나왔다.
터놓고 얘기해보자. 나는 솔직히 짜증이 났고, 재수가 없다고 느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회사에서 갑작스레 전화를 받았을 땐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둘째도 데리고 와야 하나? 이래저래 동선을 계산했던 것 같다. 애들을 모두 품 안에 끼고, 남편과 나는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사실상 남편은 업무를 보이콧했다. 우리 집 컴퓨터는 데스크톱 한 대 뿐이었고, 나는 업무 특성상 일과 시간에는 모니터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얼렁뚱땅 업무를 했다. 첫째가 자가격리 확정이 되는 순간, 약간 얼이 빠졌다. 아니, 5살짜리 아이가 어떻게 자가격리를 할 수 있지? 일정 나이 미만의 아이는 보호자가 공동 격리를 할 수 있지만, 의무는 아니었다. 나는 공동 격리 신청을 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와 함께 자가격리와 다름없는 열흘을 보냈다.
우리의 자가격리에는 든든한 지원군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첫째가 자가 격리자가 된 이상 둘째와 같은 곳에 둘 수는 없었다. 크리스마스 아침, 산타 할아버지가 두고 가셨다는 선물을 얼레벌레 첫째와 둘째에게 안겨주고 사진을 몇 장 찍은 후, 남편은 둘째를 시댁에 맡기고 돌아왔다. 나와 남편이 동시 재택근무에 들어가면서 컴퓨터가 모자라 남편이 결국 팀원의 노트북을 빌리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친정 엄마에게 했을 때, 엄마는 'X 서방에게 주는 이른 생일선물' 이라며 노트북 값을 보냈다. 덕분에 우리는 약간의 홈스쿨링 같은 느낌으로 첫째와 함께 열흘을 보냈다. 아무 곳도 가지 못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평범한 3인 가족의 겨울나기 같이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상황이 조금 꽁해 있었다. 탓할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는 그나마 괜찮은 축에 속했다. 어쨌거나 우리는 마지막까지 '음성'이었으니까. 자가격리 중에도 한 아이는 결국 유증상 확진되었고, 손꼽아 기다렸던 자가격리 해제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마침내 '음성'을 확인해 1월 2일 정오를 기다리고 있을 때에도, 한 아이는 결국 자가격리 해제 검사에서 양성이 확인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제는 그들이 운이 없어서, 아니면 좀 더 주의가 부족해서 양성이 나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운이 좋아 음성이 나온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편은 몇 번이나 궁금해했다. "어떻게 우리 OO는 코로나에 안 걸릴 수 있었을까? 역시 다른 애들보다 면역력이 더 좋아서 그런 건가?" 나는 퉁명스레 대답했다. "그러면 운동선수들은 아무도 안 걸려야 되는 거 아닐까? 그냥... 진짜 운이 좋아서 그런 것 같아." 남편은 말없이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나의 2022년은 번쩍 하고 찾아왔다. 결국 나는 2021년의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는 한 번도 보지 못했고, 2021년과 2022년의 세대교체는 나의 창틀에 살짝 걸리듯 찾아온 것을 달력을 찢으며 비로소 확인했다. 메리 코로나 크리스마스. 그리고, 코로나 뉴 이어. 재수가 없어. 좀 운이 없었어. 그렇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나의 불운에 점수를 매긴다면, 0점이 아닐까. 남과 비교하며 행복을 찾으면 안 돼. 항상 간직하는 말이지만, 이번만은 정말로 새겨본다. 나는 그나마 운이 좋은 거야.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만들어낸 불운에 침잠되지 않길 바라면서, 혼자만이 느끼는 불운의 웅덩이에서 벗어나 나는 방금 뭍으로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