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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온 Mar 03. 2024

오늘도 민심야근을 한다.

Ep6. 야근을 해야만 회사 일을 열심히 한 건가요?

야근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것일 뿐. 이 '어쩔 수 없이'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이 많이 남아 끝내야만 해서'만이 그 이유라면 좋겠지만, '눈치를 보느라' 나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는 상사의 눈치를 보다 퇴근 때를 놓치고 늦게 나오는 것을 '민심야근'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기성세대에는 야근을 당연한 문화로 여겼다. 오래 남아 일하는 사람이 좋은 실적을 낸다고 생각했고, 그 문화는 지금도 많이 남아있다. 일이 아직 적은 신입사원도 근무시간이 끝났다고 칼같이 나가는 것보다는 한두 시간 더 같이 일하고 나가는 사람을 더 좋게 평가한다. 유연근무제도가 있어도 칼같이 시간을 맞추기보다 몇 시간은 더 일하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며, 연장근로수당은 없다.



오랜 업무시간은 집중력을 낮춘다.


실제로 오래 일하는 사람은 모두 좋은 실적을 낼까? 사람은 100%의 집중력을 하루 종일 유지할 수 없으며, 이것이 반드시 실적으로 연결된다 볼 수도 없다.


기계마저도 100%의 효율을 내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관내 마찰과 부속기관에 미치는 마력 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는 기계가 아니고 인간이다. 체력이 방전되면 충전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며, 그 집중력과 체력, 효율이 24시간 지속될 수는 없다. 벌써 8시간 일을 열심히 해낸 사람은, 야근이 한 시간, 두 시간, 네 시간 길어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다. 오늘 12시간을 일해놓고 다음날 또 12시간을 일해야 한다면, 주말이 다가올수록 지칠 것이다.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효율은 점점 떨어지며, 새로운 아이디어도, 빠르고 정확한 업무처리도 더욱더 얻어내기 어려울 것이다.



유연근무제, 누군가에게는 유명무실


나는 지방근무를 하고 있으며, 서울에 본가가 있다. 2주에 한 번 금요일, 달에 두 번 서울에 올라간다. 나는 그 날 만큼은 2시간 일찍 퇴근하려 노력한다. 서울에 올라오는 데에는 3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왕복 6시간을 대중교통에 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정시퇴근 후에 서울 집으로 가려면, 금요일을 다 써야 하고, 일요일에 다시 내려가야 하니, 나의 휴일은 토요일 하루가 된다.


다행히도 우리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하는 회사 중 하나다. 자율출퇴근제, PC OFF제, 선택근로제 다 비슷한 것이다. 한 달 동안 근태시간을 자유롭게 조율할 수 있는 제도로, 그날 일을 다 했다면 퇴근해도 된다. 일단 제도 상으로는 그렇다.


유연근무 제도를 실제로 쓸 수 있는지는 팀의 분위기에 따라 많이 다르다. 어떤 팀은 하루 8시간 근무는 당연하되, 야근이 필요할 때는 늦게까지도 일해야 하며, 야근하느라 고생했으니 밥을 사주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게 미덕이라 보는 팀도 있다. 하루 1~2시간 야근은 연장근로수당을 신청하기에는 좀 작은, 당연한 시간으로 보고, 실제 회사에서는 최대한 이 비용을 아끼고자 팀장들을 압박한다고 한다. 야근을 못하게 업무 효율을 높이도록 하는 데 제도가 이용되어야 하는데, 야근을 하고도 수당신청을 못하게 이용되는 것이다. 어쨌든 우리 팀은 유연근무 제도를 사용할 수 있는 팀이며, 금요일 저녁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일찍 퇴근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민심야근을 선택하다


나는 금요일에 2시간 일찍 퇴근하기 전, 그 주 화요일 쯔음부터 팀장님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일이 많은 달에는 미리 일을 끝내기 위해 화수목 야근을 하게 된다. 이건 당연한 것. 문제는 일이 없는 주에도 그냥 퇴근하기는 어렵다. 미리미리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금요일에 눈치를 덜 보고 퇴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목요일에는 반드시 그 주에 끝내야 하는 일이 아니었음에도 2시간 넘는 야근을 했다. 일이 많은 주였고, 내 업무는 화수목 야근을 통해 다 끝냈었다. 그런데 나 말고도 모두가 한 시간 정도는 야근을 하는 게 아니겠는가? 금요일 퇴근을 위해서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해 보여야 했다. 타지에 본가를 둔 사람이 나뿐인 우리 팀에는, 야근을 했다고 2시간이나 먼저 가는 사람이 없다. 금요일에는 늘 내가 먼저 일어나게 되기에, 나만 먼저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민심야근을 택했다. 이번주에 편히 가버린다면, 그다음 주가 고달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금요일 퇴근시간 팀장님께 퇴근인사를 드릴 때면, 한마디 덧붙이실 때가 있다. 가지 말고 일하라고... 회식에서는 이 말을 '장난'이라고 표현하셨지만, 듣는 사람도 과연 장난이라 생각하겠는가... 여러 일정 상 2주 연속 빠르게 퇴근하는 날이면, '가지 말라'는 팀장님의 말씀이 마음에 찔린다. 그렇게 나는 또 민심야근을 택하게 된다.


매일 정시퇴근하는 직원의 일이 적다고 생각하는 상사들도 있다. 일이 적으니 정시퇴근을 하는구나 생각하며, 어느 정도 야근을 하는 사람의 업무량을 적정 수준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사실 그 사람이 업무 절대량은 많지만 집중을 잘했을 수도 있고, 업무 처리속도가 빠를 수도 있는 것인데. 제시간에 일을 마치고 나가는 것이 왜 적정 수준이 아닌 걸까? 야근이 많다면 일이 사람에 비해 많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일을 줄이거나, 팀에 사람을 더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상사 밑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민심야근이다. 굳이 제시간에 일을 끝내려 아등바등하기보다, 적당히 야근을 하면서 일을 더 받지 않는 편이 나은 것이다.



이제 한국 노동자들은 정시퇴근문화를 '쟁취'해야 한다.


어느 해외에서 일하는 사람의 유튜브에서 이런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한국에서 일하던 습관에 따라, 해외에서도 야근을 했더랬다. 그런데 오히려 동료들로부터 안 좋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네가 더 일하면 남들도 그만큼 해야 하는데, 네가 뭔데 우리가 쟁취한 우리의 권리를 빼앗으려 하냐는 것이다. 한국 직장인들은 아직 정시퇴근을 쟁취해내지 못해, '빼앗길 것도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모든 야근이 '민심야근'인 것은 아니다. 화장실조차 가지 못하고 일해도, 제시간에 일을 끝내지 못할 때도 있다. 그렇게 하게 되는 야근은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일에 대한 책임감으로 하는 야근은 '건강한 야근'이고, 회사의 성장이자 나의 커리어를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 건강한 야근마저 하지 않고 내 일을 내팽개친 채 퇴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민심야근'은 사라져야 할 문화라고 생각한다. 도시의 반짝이는 야경은 사실, 밤에도 잠 이루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일 것이다.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아니라면, 적당히 내일로 미뤄두고 퇴근하는 문화. 오늘 꼭 해야 할 일만 해내어도 칭찬하는 문화. 야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적정 업무량을 적정 인원이 분배할 수 있는 문화. 우리의 건강한 직업생활을 위해,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 한국사회를 유지해 나가기 위해, 민심야근이 없는 문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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