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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델리온 Mar 10. 2024

퇴근하고 자소서를 쓴다.

Ep7.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란 참 힘든 것

3-4월 벚꽃시즌은 자기소개서의 계절이다. 삼성그룹을 포함한 각종 대기업 채용 공고들이 올라온다. 전업 취준생 시절에도 이 시기에는 자기소개서 공장을 돌렸다. 하루에 두세 개씩 원서를 접수하기도 했고, 몇 시간 만에 뚝딱 자기소개서를 써내기도 했다. 10개 접수해서 1개 서류에 붙으면 다행이었으니까. 직장인 1년 차가 넘은 지금도, 퇴근하고 6시쯤 집에 돌아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사실 곧 죽어도 이직을 해야만겠다 다짐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면 더 불안해진다. 가만히만 있으면 도태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습관처럼 자기소개서를 접수하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내가 겪는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지역적 요인과 공장의 낡은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본사에 발령받을 수도 있다는 확률에 내 삶을 걸고 이 회사에 올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가장 빠른 방법인 이직을 늘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팀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 때도 있다. 잘 챙겨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부분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 가르쳐뒀더니 이직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이 뜨끔 한다. 나도 집에 가면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힘들 때면 '한번 엿 먹어봐라'하는 생각도 한다. 팀 안에서 힘들 때도 그렇고, 회사에 반감이 생길 때도 그렇다. 특히 최근에 성과급을 받을 때 그랬다. 우리 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굉장히 단면적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전체에서 나 하나가 빠진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겠지만, 팀원들은 잠시 잠깐 힘들었다가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겠지.


5~10년 차 선배들 중에서는 이직을 권유하는 사람도 있다. 신입 시절 움직이지 않으면 커리어 무덤이 되어 나중에는 움직이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내가 정말 이직에 성공한다면, 누군가는 '내가 진짜 아껴주고 잘해줬는데 뒤통수를 치다니'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역시 갈 사람은 가야지' 생각할 것이다.




이직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것, 열심히 사는 것, 다 좋지만 요즘은 체력이 부치는 것이 느껴진다. 하루종일 머리를 쓰고 있다. 사실 브런치 글쓰기도, 어학공부도, 운동도, 자기소개서 작성도, 하루 8시간 넘게 일을 하면서 병행하기에는 전부 욕심인 것만 같다.


원래 나는 나를 드러내며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편하게 내 일상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그런데 요즘 나는 회사에 숨기는 것이 너무 많다. 이직 준비 중인 상황도, 이 브런치 글도, 연애 유무도, 사생활의 절반 이상이 회사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그렇게 회사 사람들과는 한 발짝 멀어지게 되었다.


자기소개서나 브런치 글을 다 쓰고 올릴 때면 정말 뿌듯하긴 하다. 일단 뭐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 역시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 움직이고 있어, 하는 안도감. 이걸 지나야 비로소 편하게 쉴 수 있다.


이제 슬슬 봄이 오고 있다. 따뜻한 날씨와 청량한 파란 하늘, 꽃도 피기 시작했다.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걸까,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좋은 날씨도 내려놓아야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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