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월 벚꽃시즌은 자기소개서의 계절이다. 삼성그룹을 포함한 각종 대기업 채용 공고들이 올라온다. 전업 취준생 시절에도 이 시기에는 자기소개서 공장을 돌렸다. 하루에 두세 개씩 원서를 접수하기도 했고, 몇 시간 만에 뚝딱 자기소개서를 써내기도 했다. 10개 접수해서 1개 서류에 붙으면 다행이었으니까. 직장인 1년 차가 넘은 지금도, 퇴근하고 6시쯤 집에 돌아와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다.
사실 곧 죽어도 이직을 해야만겠다 다짐한 것은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면 더 불안해진다. 가만히만 있으면 도태되고 있는 기분이 들어, 습관처럼 자기소개서를 접수하기도 하는 것이다. 현재 내가 겪는 우울감과 스트레스에 지역적 요인과 공장의 낡은 분위기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언젠가 본사에 발령받을 수도 있다는 확률에 내 삶을 걸고 이 회사에 올인할 수 없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고, 가장 빠른 방법인 이직을 늘 고려하고 있는 것이다.
팀원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 때도 있다.잘 챙겨주시고 배려해 주시는 부분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 가르쳐뒀더니 이직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 한구석이 뜨끔 한다. 나도 집에 가면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생각하지만,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인다.
가끔 힘들 때면 '한번 엿 먹어봐라'하는 생각도 한다. 팀 안에서 힘들 때도 그렇고, 회사에 반감이 생길 때도 그렇다. 특히 최근에 성과급을 받을 때 그랬다. 우리 회사가 직원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굉장히 단면적으로 체감하는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전체에서 나 하나가 빠진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겠지만, 팀원들은잠시 잠깐 힘들었다가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겠지.
5~10년 차 선배들 중에서는 이직을 권유하는 사람도 있다. 신입 시절 움직이지 않으면 커리어 무덤이 되어 나중에는 움직이기 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만약 내가 정말 이직에 성공한다면, 누군가는 '내가 진짜 아껴주고 잘해줬는데 뒤통수를 치다니'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역시 갈 사람은 가야지' 생각할 것이다.
이직을 준비하고 고민하는 것, 열심히 사는 것, 다 좋지만 요즘은체력이 부치는 것이 느껴진다.하루종일 머리를 쓰고 있다. 사실 이 브런치 글쓰기도, 어학공부도, 운동도, 자기소개서 작성도, 하루 8시간 넘게 일을 하면서 병행하기에는 전부 다 내 욕심인 것만 같다.
원래 나는 나를 드러내며 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편하게 내 일상 이야기를 하며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그런데 요즘 나는 회사에 숨기는 것이 너무 많다. 이직 준비 중인 상황도, 이 브런치 글도, 연애 유무도, 사생활의 절반 이상이 회사에서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그렇게 회사 사람들과는 한 발짝 멀어지게 되었다.
자기소개서나 브런치 글을 다 쓰고 올릴 때면 정말 뿌듯하긴 하다. 일단 뭐 하나를 해냈다는 성취감, 역시 나는 열심히 살고 있어, 움직이고 있어, 하는 안도감. 이걸 지나야 비로소 편하게 쉴 수 있다.
이제 슬슬 봄이 오고 있다. 따뜻한 날씨와 청량한 파란 하늘, 꽃도 피기 시작했다. 내가 욕심이 너무 많은 걸까,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좋은 날씨도 내려놓아야 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