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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us Jul 10. 2015

전 옥숙

1929~2015

全玉淑


1929 경남 통영~2015. 7.9 서울.


한국의 영화제작자.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의 공동 창업자로 1960~1970년대 한국영화 제작이 왕성했던 시기에 국내 첫 여성 영화제작자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이화여자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해 연극을 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으로 영화계 일을 한 것은 1960년 주간영화사의 영화평론지 주간영화를 창간하면서 발행인을 맡았을 때부터였다. 1963년 은세계영화제작소를 설립하고 답십리의 대지 2,000평 부지에 스튜디오 2개와 영화 제반 시설을 갖춘 영화촬영소를 세웠다. 1964년 남편 홍의선과 영화사 대한연합영화주식회사를 창업해 첫 작품으로 부부전쟁을 제작했다. 실제 부부인 김보애와 김진규가 주연을 맡고 정창화가 감독한 부부전쟁은 부부가 제작하고 부부가 출연한 영화로 관심을 모았다.


시나리오 작가 전범성에게 본인이 쓴 시나리오 〈추풍령〉(1965)의 감독을 맡겼으며 이후 전범성이 시나리오, 감독을 맡은 민검사와 여선생(1966), 불사조(1966)도 제작했다. 영화배우 최무룡에게 감독을 맡긴 〈나운규 일생〉(1966)을 제작했고, 이만희 감독의 〈기적〉(1967), 〈냉과 열〉(1967), 〈방콕의 하리마오〉(1967), 〈생명〉(1969)을, 김수용 감독의 〈잘 있거라 일본땅〉(1966), 〈학사기생〉(1966), 〈수전지대〉(1968)를 제작했다. 신영균과 김지미가 주연을 맡은 〈그대옆에 가련다〉(1966)는 한센병에 걸린 남편을 따라 소록도로 들어가 남편을 완치시킨 여성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 화제가 되었다.


1968년 제작한 이만희 감독의 휴일은 전옥숙이 캐스팅한 신인 탤런트 전지연과 인기 배우 신성일이 함께 출연한 작품으로 이슈가 되었지만 퇴폐적이고 암울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이유로 상영금지를 당했고, 같은 해 회사 당좌거래 정지를 당하는 등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일본어에도 능했던 그는 1970년대 국내 가수의 일본 진출과 관련한 업무를 하던 일본 후지산케이그룹의 한국 지사장을 지냈다. 1974년에는 일본연구 재창간호의 발행인 겸 편집인으로 있었고, 한국 소설을 일본어로 번역해 소개하는 〈한국문예〉 발행을 맡기도 했다. 1975년 이청준, 이제하, 송영이 편집위원을 맡은 문학지 〈소설문예〉를 창간해 발행인을 역임했는데, 한국과 일본 문화계 인사와의 폭넓은 인맥으로 양국의 문화교류 활동에 기여했다.


1984년 한국방송공사의 PD로 활동했던 심현우와 함께 시네텔서울이라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사를 설립했다. 시네텔서울은 드라마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국내외 방송사에 배급하고, 해외 프로덕션의 작품을 수입 소개하는 업무를 시작했고 방송인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기관 한국방송아카데미(1991)를 부설기관으로 두었다. 설립해인 1984년 문화방송(MBC)과 외주제작 계약을 맺고 1985년 MBC에서 방영한 베스트셀러극장 - 웃음소리지상파 방송사의 첫 드라마 외주 제작 사례였다.


본격적인 작사가로 활동한 것은 아니지만 조용필이 작곡하고 부른 생명(1982)과 서울 1987년(1988)이 그의 작품이다.



참고

- KMDB 전옥숙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이미지

"홍일점 영화제작자 전옥숙씨", 1968년 10월 21일, 경향신문



p.s. 친분이 있는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쓴 시베리아 유끼꼬 별명의 全玉淑 씨는 술술 읽힙니다.


p.s. 첫 제작 작품인 〈부부전쟁〉의 당시 신문 광고가 다양하게 있어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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