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오단장〉이후 4년 만에 읽은 요네자와 호노부의 소설. 일상이다 싶게 일본 추리소설을 읽다가 최근에는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만 접하게 되어서 그런지 주말에 휙~ 하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덧없는 양들의 축연〉이나 〈추상오단장〉에 남아 있는 신선함이 좋았는데 〈야경〉은 그런 점이 전혀 없는 매끈하고 잘 짜여진 작품이라 한편은 아쉽기도 하고 한편은 감탄을 하면서 읽었습니다.
경찰소설 느낌이 나는 표제작인 "야경"을 시작으로 중편, 단편 6편으로 구성되었는데 단편들이 연결되는 그런 이야기 구조는 아니고 각각 마다 개성이 꽤 뚜렷한 작품들이 고른 수준의 재미를 줍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름 납량 특집 드라마 극장으로 하면 딱 좋겠다 싶은 "문지기"가 제일 재미있었는데요, 구성도 그렇고 이 배우가 할머니 역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으니 훨씬 더 으스스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역시 공포에 가까운 "사인숙"도 예전에 갔던 료칸을 상상하며 봤습니다.
본격물은 아니라서 마지막에 가서야 헉! 하는 반전이 있는 소설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곳곳에 던져놓은 여러 장치나 소재를 보면서 든 의문이 마지막에 가서 딱 맞아 떨어지는 소소한 재미는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작품 속 결말이 명쾌해서 즐거움을 주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 작품 속 인물들의 범행 동기나 처지가 안쓰러워 안타까움이나 쓸쓸함을 주는 것은 요네자와 호노부 답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역시나 인간은 아무리 머리를 쓰고 음모를 꾸며도 한치 앞도 예상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고, 순수하고 착할 것만 같은 존재도 모두 다 속셈이 있다는 씁쓸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요네자와 호노부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재미있게, 오호 이렇게 많은 상을 받은 소설이니 재미있겠지 하고 처음 그의 소설을 읽는 분들도 역시나 흥미를 느끼면서 소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적극 추천~
아래는 6편 단편의 첫 문단을 모아봤습니다.
장례식 사진이 나왔답니다.
- 야경
사와코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다는 소식에 허겁지겁 집을 뛰쳐나온 게 늦더위의 기운이 길게 꼬리를 드리운 구월 말이었다. 누가 그러길, 도치기 야미조 산 첩첩산중에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온천 여관이 있는데 사와코가 그곳 종업원으로 들어갔다는 것이었다.
- 사인숙
부모님은 두 분 다 남들 시선을 끌 만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외할머니가 젊을 때 신문에 실릴 만큼 미인이었다고 한다. 어린 나를 보며 여러 친척들이 외할머니를 닮았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름답게 성장했다. 사람들은 내 외모를 칭찬해주었고 나 역시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겨 스스로를 가꾸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 석류
나는 심판받고 있다.
- 만등
엔진을 끄자 노랫소리도 멈췄다. 지긋지긋한 반복이 끝났다는 사실에 짜릿한 해방감을 느낀 뒤에, 지겹도록 들은 CD를 억지로 들을 필요는 없었다고 혀를 찼다.
- 문지기
애타게 기다리던 전화는 오후 1시가 넘어서야 왔다.
- 만원
p.s. 독자의 눈에 띄기 위한 것임은 이해하지만 표지가 좀 과하다는 생각. 전 처음에 제목보다 더 큰 "1위"의 1을 첫권의 1로 보고 1권 2권으로 나온 줄 알았어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