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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lius May 20. 2015

살리에리의 고통

 영화 〈아마데우스〉와 희곡 〈아마데우스〉

〈아마데우스 Amadeus〉(1984)는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모든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지만 실제 원작인 희곡을 읽은 것은 한참 후였습니다. 영화를 재미있게 봐서 자연스럽게 원작인 희곡에도 관심이 가 읽게 되었는데 줄거리를 알고 보니 소설보다 낯설게 느껴지는 희곡 읽기도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원작과 영화는 등장인물의 차이(예를 들어 영화에 나오는 살리에리의 고해를 받는 신부나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는 희곡에는 등장하지 않는다던가, 살리에리의 정부가 영화에는 두드러지지 않는다던가 하는)부터  내용상에서도 다른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볼 때 가장 큰 차이는 희곡 속 살리에리가 영화 속 살리에리보다 훨씬 더 크게 좌절하고 절망하고 모차르트에게 더 강하게 악의를 품는데 그 모습이 매우 실감 나게 묘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원작자 피터 쉐퍼 본인이 영화 대본을 쓴 것이니 영화 속 살리에리 모습도 작가의 의도겠지만 양쪽을 모두 비교해 보는 입장에서는 확실히 희곡 속의 살리에리가 더 인간적으로 이해가 갑니다.


제가 희곡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살리에리가 모차르트의 작품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는 첫장면이었습니다. 영화보다 희곡이 훨씬 더 절절한데 희곡의 앞 부분이라서 그런 인상을 더 강하게 받았습니다. 


영화를 보면 이 장면은 이후 콘스탄체가 가져온 악보를 보면서 그 때 들었던 것이 맞군! 하면서 다시 한 번 신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의 전 단계 설정 정도로 느껴지지만, 희곡을 보면 앞으로 전개될 살리에리의 모차르트에 대한 적대감, 재능에 대한 좌절과 분노는 이미 여기서 완성된 것처럼 보입니다. 이후 살리에리가 하는 모든 행동, 말은 다 이때 느꼈던 고통에 대한 주석처럼 여겨집니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1분이 조금 넘는 짧은 분량입니다. 여기서 살리에리는 놀라운 음악에 대한 낯선 기쁨과 감동을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https://youtu.be/PGSzeHKgHfI?feature=shared


On the page it looked Nothing! The beginning simple, almost comic. Just a pulse. Bassoons, basset horns like a rusty squeezebox. And then, suddenly high above it an oboe. A single note, hanging there, unwavering. Until a clarinet took it over sweetened it into a phrase of such delight. This was no composition by a performing monkey.This was a music I had never heard. Filled with such longing, such unfulfillable  longing. lt seemed to me l was hearing the voice of God. -  Amadeus Script - Dialogue Transcript

하지만 희곡에서 살리에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스러움에 몸부림치다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모차르트와 콘스탄체의 외설스럽고 경박한 대화를 뒤로 하고 이어지는 긴 방백입니다.

(충격을 받고, 관객에게) 그리고 나서 곧바로 연주회가 시작되었죠. 나도 방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었습니다 ─ 어떤 세레나데였지요. 처음엔 어슴프레 들렸습니다만 ─ 연주장에 참석하기가 너무 두려웠던 거죠. 그러나 곧 음률이 내 귀에 뚜렷이 잡혀왔습니다 ─ E플랫의 장엄한 아다지오였습니다. 

〈열세 개의 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의 아다지오(K.361)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살리에리는 이 음악에 홀려 아주 조용하고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 음악은 단조롭게 시작됐어요. 말하자면 바순과 바셋 호른들이 어우러진 가장 낮고 단순한 음조(音調)였고, 마치 낡은 손풍금 같은 소리를 냈습니다. 만약 그 박자가 느리지 않았다면 필경 우스꽝스럽게 들렸을 겁니다. 하나 그 느린 박자는 잔잔한 고요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오보에의 소리가 요란하게 튀어나왔죠.(오보에의 소리가 울려나온다) 그 소리가 계속되고, 난 귀를 거머쥐고 ─ 나의 심금을 울리고 ─ 난 그만 숨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그러자 클라리넷이 울려 퍼지더군요. 그제서야 나는 숨을 내쉬었고, 가슴이 한결 후련해졌어요. 그리하여 날 짜릿한 환희에 떨게 했습니다. 방안의 불빛이 흔들렸고, 나의 눈은 흐릿해졌고! (차츰 감정이 격해지며 생기가 치솟아) 점점 높아져가는 저음에 높은 음역의 악기들이 흐느끼듯 속삭이듯 서로 얽히면서 나의 심혼을 사로잡았습니다 ─ 고통의 가느다란 밧줄이 나를 휘감고 조였습니다. 아, 그 고통! 내 일찍이 알지 못했던 그 고통. 난 나의 하나님에게 외쳐댔죠. "이것이 뭡니까? ……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손풍금 같은 그 음악은 계속 울려 퍼졌고, 내 머리를 무섭게 으깨는 고통을 더 참을 수 없어 결국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

열에 들뜬 그는 의자에서 뛰쳐나와 무대를 가로질러 무대 전면 오른쪽으로 뛰어간다. 그의 뒤쪽 라이트 박스에서는 서재가 서서히 사라지고 밤거리 장면으로 바뀐다. 작은 집들이 밤하늘을 이고 있다. 음악이 어설프게 깔린다. 

나는 옆문을 박차고 허겁지겁 내려와 길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숨에 헐떡이며 차가운 밤거리로. (고통 속에서 소리친다) "도대체 뭐란 말입니까? 이것은 무엇입니까? 가르쳐주세요! 이 고통은 무엇입니까? 이 음악이 희구하는 것이 뭣입니까? 채워질 수 없는 것인데도, 듣는이로 하여금 밀물처럼 심금을 흥건히 채워주니 말입니다. 이건 진정 당신의 뜻입니까? 신이여. 바로 당신의 것입니까? …… " (사이) 위쪽 살롱에서 음악이 어렴풋이 들려왔습니다. 별들은 텅 빈 거기를 희미하게 비춰주었죠. 난 갑자기 겁이 났습니다. 신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습니다 - 아니, 내 귀에 익은 소리였죠 - 외설스런 말을 곧잘 조잘대는 그 풋내기 놈의 목소리였습니다.

〈아마데우스〉제1막 5장, 피터 셰퍼, 신정옥 옮김, 범우사, 2009

희곡 마지막 부분에서 살리에리는 아래와 같이 말하며 이야기를 접습니다. 이것도 영화와 다른 부분 중 하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살리에리의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나약함에 더욱 공감하게 됩니다. 

이젠 나 스스로가 망령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차례가 되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나는 그늘에 서 있을 것이고 여러분의 고통받은 귓속에 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 여러분이 실패하고 ─ 잡을수도 버릴 수도 없는 신의 조롱 소리를 들을 때 내가 나의 이름을 속삭여줄 것입니다. 착한 사람들의 신성한 수호자 살리에리. 여러분은 실의의 밑바닥에서 나에게 기원을 하세요. 비밀의 살리에리. 그러면 난 여러분을 용서할 것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단순한 천재와 범재의 이야기에서 인간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전환됩니다. 모차르트가 아닌 우리는 살리에리가 그랬듯 계속 좌절하고 고통을 느끼고 실패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리에리는 음악적 재능이 없는 사람의 수호자가 아니라 "착한 사람들의 신성한 수호자"가 되고 마지막 대사에서 다시 한 번 착한 사람들을 이야기합니다. 

지금 존재하는 ─ 또는 앞으로 태어날 모든 곳에 있는 착한 사람들이여 ─ 나는 그대들을 용서하리라! 아멘.

〈아마데우스〉제2막 20장, 피터 셰퍼, 신정옥 옮김, 범우사, 2009


p.s. 아래 Youtube 속 아다지오를 듣는다고 해도 머리가 으깨질 것 같은 고통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차분해지는 것을 보면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그저 기쁨을 느끼는 평범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


https://youtu.be/LLpBkIhlO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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