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파워 : 새로운 권력의 탄생
얼마 전 배달의 민족을 만든 회사인 우아한 형제들의 이사 한명수 님의 강연을 듣고 왔다. 그들이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였다.
강연을 듣는 내내 신기하게도 책 <뉴파워>의 내용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들은 뉴파워, 즉 신권력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배달의 민족이 했던 성공적인 활동들에는 분명히 ACE가 존재했다. 신권력은 뭐고, ACE는 또 무슨 말이냐 할 수 있겠다. 이를 이해하기 전에 우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떠한 힘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는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뉴파워>의 저자 제러미 하이먼즈와 헨리 팀스는 우리가 두 가지의 거대한 힘이 서로 부딪히고 견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 두 가지 힘이란 바로 구권력과 신권력을 말한다.
구권력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되는 권력, 즉 폐쇄적이고 지도자 주도형이며 상명하달 방식으로 동작하는 권력을 말한다. 이 권력을 손에 넣은 자는 절대 놓지 않으려 하고 소수만이 이 힘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신권력은 전혀 다르다. 신권력은 개방적이고 참여적이며 다수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동작한다. 권력이 한 곳에 고여있는 게 아니라 강물처럼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한다.
예를 들어보자. 2018년도쯤 우리나라에 전국적으로 미투 운동이 일어났었던 걸 기억할 것이다. 사실 이 미투 운동은 미국의 한 영화감독에 의해 처음 시작됐다. 당시 미국 최고의 영화감독이었던 하비 와인스틴은 매년 열리는 영화제에서 수상자들의 수상소감에 하느님과 견줄 정도로 빠지지 않고 나오는 절대적인 인물이었다. 또한 그는 영화 산업 전체의 부를 일구는데 기여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영화계는 수십 년 간 성희롱과 성폭력을 자행한 그를 보호해왔다. 그는 기자들에게 호의를 베풀고 영화배우들에게 접근할 기회를 제공하면서 언론을 장악했다. 그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들은 배우 생활이 끝날지도 모르는 두려움에 침묵을 지켰다. 아주 전형적인 구권력의 사례다.
2017년 중순쯤 와인스틴과 그 피해자들을 다룬 뉴스가 터지고난 며칠 후, 여배우 알리사 밀라노는 여성들에게 각자가 당한 성희롱과 성폭력 이야기를 자신의 트윗에 Me Too라는 메시지를 달아 같이 공유하자고 했다. 그 결과 48시간 만에 미투 해시태그를 단 트윗이 100만에 가까워졌다. 그렇게 미투 운동은 인터넷을 통해 물결처럼 전 세계를 휩쓸었고 머나먼 우리나라까지 확산됐다.
아무도 앞장서서 이 운동을 이끌지 않았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에 에너지를 보탠 것뿐이었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이에 참여한 이들이 힘을 얻었다는 점이다. 보복당할까 두려워해 온 많은 이들이 가해자에게 맞설 용기를 얻었다. 이것이 바로 구권력은 절대 만들어 낼 수 없는 신권력의 힘이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세상에 의미 있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늘 운동이 일어났고 조직이 만들어졌으며 문화를 일으켜왔다. 오늘날에는 다른 사람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도구(인터넷) 덕분에, 사람들에게 참여 욕구와 조직화 본능을 건드리는 아이디어가 주어지면 그들끼리 신속히 의기투합할 수 있게 됐다.
미투 운동이 성공적으로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메시지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고 동참하게 만드는 설득력 있는 맥락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설득력 있는 아이디어와 그에 대한 행동의 단서를 투척하면 사람들은 이를 다양한 방식과 형태로 확산시킨다. 미투 운동은 구체적인 행동 방식(#MeToo 해시태그를 달고 자신의 사연을 공유)을 제안했고, 다양한 방식과 형태(프랑스에선 #BanlanceTornPorc, 이탈리아에선 #QuellaVoltaChe라는 약간씩 다른 뜻으로)로 확산됐다.
책 <뉴파워>에서는 이와 같이 설득력 있고 확산 가능한 아이디어를 설계하는 데에는 다음의 세 가지 원칙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1. 행동에 옮길 수 있다(Actionable): 아이디어란 사람들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된다. 그저 감탄하고 기억하고 소비하는 대상 이상의 무엇이다.
2. 연결되어 있다(Connected): 아이디어들이 연결되면 다른 사람들과 더 가까워지고 생각이 같은 사람들로 구성된 공동체의 일원이라는 소속감도 느껴진다. 이러한 관계망 효과로 아이디어는 더 널리 확산된다.
3. 확장이 가능하다(Extnesible): 아이디어는 확산시키는 참여자가 그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대상에 알맞게 맞춤형으로 만들거나 뒤섞거나 새로운 형태를 만들 수 있다. 아이디어에 여러 공동체들이 공감할 공통적인 줄기를 심어 이를 변형시키고 확장하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앞서 언급했던 ACE(각 원칙의 알파벳 앞글자를 딴) 원칙이다. 배달의 민족이 하는 활동에는 이 원칙이 잘 적용되어 있었다. 또한 조직문화를 만드는데에도 줄곧 신권력의 힘을 활용해왔다는 걸 이사님의 강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환승구간이나 광역버스 광고판에서 위 사진처럼 배민신춘문예 수상작품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올해엔 무려 약 25만 개의 작품이 응모되었다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이 이벤트에는 배민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ACE 원칙이 적용되고 있었다. 단순히 짧은 글귀를 응모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은 행동으로 옮기기 쉬웠고(Actionable), 각자가 제출한 글귀들과 수상작들을 공유함으로써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줬으며(Connected),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음식이라는 주제로 진행됐기 때문에 다양하고 설득력 있는 작품들이 나올 수 있었다(Extensible).
그들은 그저 하나의 마케팅 이벤트를 진행한 것뿐이다. 구권력의 방식처럼 조직 내에서 그들끼리 좋은 콘텐츠를 짜내는데 골머리 앓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아이디어에 동참하여 알아서 멋있고 통찰력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냈고, 배민은 그 콘텐츠들을 활용해 비용 대비 엄청난 마케팅 효과를 얻었다.
배민이 성공할 수 있었던 많은 이유 중 하나로 그들의 조직문화를 꼽기도 한다. 한명수 이사님은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 중 대부분은 그저 직원들의 창의성을 높여주는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창의성은 즐겁게 일하는데서 나오며 대부분의 회사는 이런 감정적인 측면을 배제하곤 한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즐겁게 일하기 위해 잡담을 나누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듯했고,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업무 보고서에 자신이 업무를 진행하면서 든 감정을 적게 하는 것이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이란 의도, 생각 그리고 감정을 나누는 것이라 강조하며, 딱딱하기 쉬운 업무 보고서에 이러한 점을 적용해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감정적인 측면을 캐치하고 피드백을 나눌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감정은 신권력 구조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부분이다. 감정을 자유롭게 나눌 수 있는 환경은 서로를 더욱 연결시키고 좀 더 근본적인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한다. 바로 그 점이 다른 일반적인 회사와 극명한 차이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치우치는 것은 대부분 좋지 못한 결과를 낳듯이, 모든 일에 신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구권력이 우세한 세상에서 살아왔다. 구권력 하에서는 리더가 뛰어나고 그 밑의 조직이 조직화가 잘 되어 있다면 엄청난 효율성을 자랑한다. 배민도 회사의 정체성을 정하고 일관성 있게 유지하는 데엔 구권력의 힘을 이용하고 있다. 신권력은 우리가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사회가 되면서 급부상하게 된 말 그대로 새로운 권력이다. 익숙지 않은 이 힘에 대해 우리가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책 <뉴파워>에서는 이젠 주어진 상황에 맞게 두 권력을 적절히 혼용할 수 있는 능력이 현시대에 성공을 바라는 이들에게 매우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이라도 자신이 흔히 말하는 꼰대가 되어가고 있진 않은지, 혹은 극단적으로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있진 않은지 점검해보는 것은 어떨까?